스미다
-이병률-
새벽이 되어 지도를 들추다가
울진이라는 지명에 울컥하여 차를 몬다
울진에 도착하니 밥냄새와 나란히 해가 뜨고
나무가 울창하여 울진이 됐다는 어부의 말에
참 이름도 잘 지었구나 싶어 또 울컥
해변 식당에서 아침밥을 시켜 먹으며
찌개냄비에서 생선뼈를 건져내다 또다시
왈칵 눈물이 치솟는 것은 무슨 설움 때문일까
탕이 매워서 그래요? 식당 주인이 묻지만
눈가에 휴지를 대고 후룩후룩 국물을 떠먹다
대답 대신 소주 한 병을 시킨 건 다 설움이 매워서다
바닷가 여관에서 몇 시간을 자고
얼굴에 내려앉는 붉은 기운에 창을 여니
해 지는 여관 뒤편 누군가 끌어다 놓은 배 위에 올라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한 사내
해바라기 숲을 등지고 서럽게 얼굴을 가리고 있는 한 사내
내 설움은 저만도 못해서
내 눈알은 저만한 솜씨도 못 되어서 늘 찔끔하고 마는데
그가 올라앉은 뱃전을 적시던 물기가
내가 올라와 있는 이층 방까지 스며들고 있다
한 몇 달쯤 흠뻑 앉아 있지 않고
자전거를 끌고 돌아가는 사내의 집채만한 그림자가
찬물처럼 내 가슴에 스미고 있다
이병률 시인의 <스미다>는 늘 내 마음 한 구석에 스며있는 시다. 사실 스미다 라는 제목보다는 자꾸만 울진......으로 기억이 나서 검색할 때마다 이병률 울진, 이라고 쓰게 된다. 울진, 울다, 설움...... 이런 단어로 연상이 되는 시라서 그런가.
울진이라는 지명에 울컥해서 무작정 차를 몰고가고, 나무가 울창해서 울진이 됐다는 어부의 말에 또 울컥, 홀로 매운탕을 시켜먹다 왈칵 눈물이 나는 설움...... 그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내어 우는 어떤 사내를 보며 내 설움은 저만도 못해서 찔끔 나고 마는 눈물...... 이런 시구가 꼭 소리내어 울지 못하는 이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처럼 내 가슴에 스미어 있다.
소리내서 크게 울어본 지가 오래된 것 같다. 누군가 들을까 두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까지 참고 또 참다가 겨우 몇 방울 주르륵 흘려내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덤덤해져서. 그런 날이면 늘 내 설움은 저만도 못해서...... 라는 시구와, 노을이 내려앉는 바닷가의 뱃전에 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엉엉 우는 남자의 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곤 한다.
읽을 때마다 가슴 속에 한 방울씩 내려앉으며 위로가 되는 시.
※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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