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need to talk about Kevin





감독 : 린 램지

배우 : 틸다 스윈튼(에바), 이즈라 밀러(케빈), 존 C. 레일리(프랭클린)

장르 : 드라마, 스릴러, 서스펜스

상영시간 : 112분

별점 : ★★★★☆ (3.75) 


한줄 평가 : 모성애란 무엇인가? 부모와 자식의 '당연스러운' 관계에 낯선 질문을 던지는 한 가족의 비극사






 

우리는 일반적으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순리이며, 특히 아이를 10달동안 뱃속에 품었던 엄마의 모성애는 더 강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일까? 모성애는 어느 순간에도 발휘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일까? 그 어떤 자식이라고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엄마는 자식을 사랑해야 하는가?


악인은 만들어지는 것일까 타고나는 것일까?


여기 한 가족이 있다. 자식을 사랑하지 못했던 엄마와, 그런 엄마를 증오한 한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각자의 답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케빈에 대하여





영화의 주인공은 엄마 Eva와 아들 Kevin 두 사람이다. 이 영화는 시작부부터 스페인 토마토 축제의 강렬한 붉은색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데, 영화 내내 두 주인공의 불편한 어긋남과 스트레스는 기묘한 배경음악과 붉은색의 이미지로 표현된다.


 Eva는 자유와 여행을 즐기는 여행가였지만 스페인 토마토 축제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의도치 않게 임신을 하게 된다. 애 아빠이자 남편이 된 프랭클린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해 이것저것 물건을 사오는 등 Eva의 임신에 행복해하지만, Eva는 자신의 임신이 낯설고 떨떠름하다.




Eva는 아들 Kevin을 낳았지만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인 아들 Kevin. 엄마를 악의어린 표정으로 노려보며, 케빈의 마음을 열어보려는 엄마의 그 어떤 시도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엄마는 그런 케빈을 사랑하지 못한다.


 

 

1. 한 인간으로서의 감정과 모성애


 

최근 산후우울증으로 자녀를 학대하는 엄마들의 소식을 뉴스를 통해서 듣는데, 아이가 개인적인 고통이나 스트레스의 기억과 연결되면 아이를 보는 것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아이들을 사랑하지 못하거나 학대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었다. 케빈을 낳은 에바의 표정을 보며 그 기사가 떠올랐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치 않았던 임신, 그리고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던 출산.

나는 여기서부터 이 두 母子의 비극이 잉태되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Eva라는 한 인간으로서의 감정과, 엄마라는 존재로서 가져야 하는 모성애가 상충되는 순간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먼저 한 인간으로서의 Eva를 보자. Eva는 여행을 사랑했지만, 아이를 가진 후로 엄마와 아내로서의 의무 때문에 이제는 자유로이 여행을 다니지 못하게 된다. 또 아이를 위해 좋다는 남편의 주장에 못 이겨 사랑하는 뉴욕을 뒤로 하고 한적한 교외의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간다. Eva로서는 아이가 자신의 커리어와 사랑하는 터전을 빼앗은 셈이다.


또 그렇게 힘들게 낳은 아이는 자신과 전혀 맞는 것 같지 않다. 아무리 안고 달래도 내내 울면서 아빠가 오자마자 울음을 뚝 그친다. 때문에 남편 프랭클린은 케빈이 얼마나 까다롭고 힘든 아이인지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함께 놀이를 하려고 해도 전혀 엄마인 자신에게는 반응을 해주지 않는다. 자라면서는 항상 뾰로통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아이의 적의에, Eva는 화를 참기 힘들 때도 있다.


갓난아기 시절 아이의 울음소리가 듣기 싫었던 에바는 땅에 드릴을 뚫고 있는 공사판 옆에 유모차를 대고 서있기까지 했다.


아이가 울어댈 때마다 자신이 '엄마'로서 비난받는 것 같다고 느꼈을까? 아니면 그저 그치지 않는 울음소리에 너무나도 지치고 질려 차라리 공사소음이 낫겠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스트레스였을까?


또 기저귀를 갈자마자 보란듯이 자신을 쳐다보며 또 다시 새 기저귀에 똥을 싸는 아이를, 기저귀 테이블 위에서 집어던져 케빈의 팔이 부러지기도 했다.

 

 

 

 

그런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도 놀란 Eva는 집으로 오는 차 안 케빈에게 사과를 하지만, 케빈은 듣는둥 마는둥한다. 하지만 정작 아빠가 왜 팔이 부러졌냐고 묻자 자신이 놀다가 실수로 부러졌다고 대답한다. Eva는 그런 케빈의 대답에 안도하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러한 장면에서, 자신이 '엄마'로서 부족한 사람이며 남들이 바라보는 일반적인 엄마와 자식 관계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싫은 Eva의 두려움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나중에 함께 얘기를 할 때 친구들이 답답했던 것이, 남편이 믿어주지 않으면 CCTV 등으로 녹화를 해서라도 케빈의 행동을 남편에게 보여줬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본인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면 남편과 상의를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Eva는 남편에게 자신이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엄마라는 것을 인정하고 드러내기 싫었던 것이고, 또 그런 자신에 대해 다정한 남편이 어떻게 반응할지 두려워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Eva가 남편에게 케빈에 대해 어렵게 말을 꺼낼 때마다, 남편 프랭클린은 '사내애들은 다 그래.' '애들은 그러면서 크는 거야. 그게 애들이지.' 라며 Eva의 말에 공감을 해주지 않는다. 사실 이러한 프랭클린의 시선은 일반적인 대중의 인식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애들이 영악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으며, 날 때부터 사악한 아이는 없다, 사고치는 짓궂은 아이 때문에 힘들어하는 엄마가 한둘인가 하는 생각. 또 설사 아이가 그렇다 하더라도 엄마는 자식을 사랑해야한다는 당연스러운 모성애에 대한 관념이 그것이다.

 

Eva 자신조차도 그러한 '모성애'에 대한 관념이 익숙했기 때문에, 케빈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나중에 낳은 딸 실리아도 의도치 않은 임신으로 가진 아이였지만, Eva는 케빈과는 달리 실리아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에 대해서 실리아가 케빈과는 (엄마에 대한) 행동 자체가 다르기도 했지만, '정상적인' 부모 자식 관계에서 실리아를 통해 자신이 제대로된 엄마임을 확인받고 보상받았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케빈에게 Eva는 스스로가 늘 부족한 엄마였지만(자식을 사랑하지 못하는), 실리아에게만큼은 부족하지 않은 엄마였던 것이다.

 

 

한편 늘 자신에게만 적의를 보내오는 아이에 대해, 엄마는 그럼에도 모성애를 가져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사람은 대부분 자신을 한결같이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지 못한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자기방어기제가, 부모 자식 관계의 특수성 안에서는 적용될 수 없는가?

 

이에 대해 나 자신도 인간으로서 케빈의 행동을 미워할 수는 있지만, 엄마로서는 케빈을 그럼에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한 인간으로서의 Eva와 엄마로서의 Eva가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여담이지만 케빈을 맡은 아이들이 어찌나 비슷하게 생겼는지 사진을 보고 빵 터졌다. 엄마 EVA를 노려보는 그 기분나쁜 눈빛, 뾰로통한 표정이 한결같다. 그런데 지금보니 Eva의 표정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차가운 눈빛, 불쾌하게 다물린 입술. 두 사람의 비극은 쌍방과실이었다고 생각한다.

 


 

2. 싸이코패스 케빈- 타고난 악인인가 아니면 만들어진 악인인가?






케빈이 싸이코패스, 즉 반사회적 인격장애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케빈은 아빠와 여동생 실리아를 집에서 살해한 후, 학교에 자전거용 자물쇠를 걸어잠그고 학생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화살을 쏘아 죽였다. 범행 후 케빈은 마치 올림픽 선수가 환호하는 관객들에게 답례하듯 우아하게 활을 들어 인사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경찰이 자물쇠를 부쉈을 때도 여유만만하게 미소를 띄고 걸어나온다. 자신의 범행이나 행동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이나 고통을 보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모든 싸이코패스가 악인은 아니듯, 나는 싸이코패스인 케빈을 범죄자이자 악인으로 만든 데에는 Eva와 케빈의 관계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Eva의 임신이 원하지 않은 것이었고 임신을 반기지 않았다는 것은 영화에서 여러 장면을 통해 나타난다. 산부들이 다니는 요가 클래스의 탈의실에서, 다른 엄마들은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즐겁게 배를 쓰다듬으며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지만 Eva는 머뭇거리다 결국 짐을 싸서 나가버린다.

아이가 자라면서도 Eva는 아이를 사랑하려고 노력했지만, 엄마에게만 비협조적이고 악의적인 눈빛을 보내는 케빈을 결국 사랑하지는 못한다.

 

중간에 이런 장면이 나오는데, 기저귀를 차고 앉아있는 케빈을 향해 스트레스가 가득 차 있던 Eva는 '네가 태어나기 전에 엄마는 더 행복했다. 엄마는 너만 아니었다면 지금 프랑스에 있었을 거고,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했을 거야'라고 말한다. 때마침 퇴근해서 들어왔던 남편이 그 장면을 보고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방을 나가버린다.

 

영화를 보며 처음에는 Eva가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친구들과 토론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Eva는 그저 부모로서 해야하는 의무적인 보살핌을 줬을 뿐, 아기가 자라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랑을 주지 않았다. Eva는 케빈이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케빈에게 지속적인 정서적 학대를 가했다. 영화를 보면 갓난아이인 케빈이 울어댈 때도 팔을 쭉 뻗어 아이를 흔들 뿐, 아기를 안아주지 않는다.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아이를 앞에 앉혀두고 너만 없었다면 엄마는 더 행복했을 거라는 말도 한다.

 

유아교육학을 전공한 친구가 했던 말이 있다. 아이에게 있어 가장 큰 불행은 자신은 부모가 원하지 않는 존재라는 말을 직접 듣는 거라고.

 

케빈은 Eva가 그 말을 하기 전부터, 자신이 잉태된 그 순간부터 자신의 존재를 지속적으로 부정당하고 외면당했다.


아기는 본능적으로 누가 자신을 사랑하고 누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지를 아는 존재이다. 뱃속에서부터 자신을 반기지 않고 사랑하지도 못했던 엄마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아기를 사랑하지 않은 엄마, 엄마에게 사랑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은 아이. 둘의 어긋나고 비틀린 관계는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누구의 잘못이 먼저인지를 따지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익숙한 거랑 좋아하는 거랑은 달라. 엄만 그냥 나에게 익숙한거야. " -케빈

케빈은 엄마 Eva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며, 그저 자신에게 익숙해져있는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또 동생 실리아가 태어났을 때 케빈의 반응을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다. 사랑스럽다는 듯 아기를 안고 어르는 엄마를 지켜보던 케빈은 어항에 손을 담가 일부러 물을 아기에게 뿌린다. 엄마 Eva는 그런 케빈을 야단친다. 맛있는 과자를 먹자며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를 달래주는 것은 아빠 프랭클린이다.

 

케빈은 엄마가 대하는 것이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차라리 비교대상이 없었다면 엄마가 '나에게만' 사랑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여동생 실리아에게 Eva는 모성애를 보이며, 그로부터 케빈이 어떠한 정서적 박탈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점은 자명한 부분이다. 평범하게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 아래에서도, 동생이 태어나면 첫째가 일부러 더 아기짓을 하거나 관심을 끌기 위해 사고를 치는 행동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동생으로 인해 자신이 받던 사랑을 뺏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물며 케빈은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 데에 반해 실리아는 태어난 순간부터 엄마의 사랑을 자연스레 받는다.

 

실리아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케빈은 앓아 눕게 되는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 아파서 늘어져있는 케빈을 안고 침대로 데려간 엄마에게 기대 누워, 엄마가 읽어주는 로빈훗 동화책을 행복하게 듣고, 아빠가 퇴근해서 찾아오자 아빠에게 적의를 보이며 나가라고 한다. 엄마는 놀라지만 한편으로는 케빈이 드디어 마음을 여는가 싶어 행복하다.

그러나 다음날 케빈이 낫자마자 케빈의 태도는 도로 돌아오고 엄마 Eva는 허탈함과 실망을 느껴버린다.

 

 

 

이 장면에 대해, 내 친구들은 케빈이 엄마를 더 괴롭히기 위해 일부러 엄마를 좋아한 척하다 다시 원래 태도로 돌아간 것이라고 해석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사람은 몸이 아플 때 날을 세웠던 방어기제를 내리고 자신의 약한 부분을 드러내게 된다. 아픈 케빈은 '나는 엄마와 행복하지 않다'는 날선 방어기제를 내려놓고 사실은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본연의 솔직한 욕구에 충실했던 것이다.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고 보살피는 엄마에게 기대 엄마의 사랑을 즐기면서. 또 한편으로는 실리아가 태어났다고 해서 자신이 버림받지 않는다는 확신도 필요했던 것 같다.





세번째로, Eva가 이사온 집 자신의 방을 세계지도로 꾸몄을 때 케빈이 지도를 싫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이 장면 역시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었던 케빈의 내면이 드러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Eva가 동경의 눈빛으로 자신의 방을 채운 지도를 바라볼 때, 케빈이 구불구불한 선 따위가 뭐가 좋냐며, 바보 같다고 한다. Eva가 잠시 전화를 받으려고 자리를 비웠다 다시 돌아오자, 방은 케빈이 물감을 채운 물총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고 Eva는 화를 못 이겨 케빈의 앞에서 물총을 발로 밟아 부숴버린다.


이 장면도 케빈이 엄마를 지독하게 괴롭히는 씬의 하나로 읽힐 수도 있겠지만, 나는 케빈에게 있어 '구불구불한 재미없는 선'은 엄마의 애정을 빼앗아 가버린 어떤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늘 자유와 여행을 동경한 엄마, 그리고 너만 아니었으면 엄마는 지금쯤 프랑스에 가서 행복했을 거라던 말에서 엄마는 나를 원하지 않았고 나보다 여행을 더 사랑한다고 느껴 엄마가 여해을 그리워하는 것 자체를 싫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마지막으로 금요일 데이트 장면도 마찬가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Eva는 16살 케빈과 함께 외출을 하는데, 미니골프를 치고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케빈은 한겨울에 반팔 차림으로 나오는 삐딱한 행동으로 처음부터 Eva의 심기를 거스른다. 골프장 프론트에서 등록을 하는 도중, Eva는 뒤쪽의 벤치에 앉아 정크푸드를 먹는 사람들에 대해 차갑게 험담을 한다.

 

"살 찐 사람들이 물만 마셔도 살찐다는 말은 다 핑계야. 저것봐. 저렇게 좋지 않은 음식을 계속해서 먹어대면서 살이 찐다고 투덜대지. 그냥 저 사람들은 좋지 않은 음식을 먹고 게으른 것 뿐이야."

 

그 말에 대해 케빈은 '가끔 엄마, 남에 대해서 굉장히 막말하는 거 아느냐'고 묻고 Eva는 너도 나에게 막말을 하지 않느냐고 차갑게 대꾸한다. 그 후 둘은 서먹한 분위기에서 골프 한 게임을 치고 케빈이 공을 홀에 넣자마자 네가 이겼다며 깃발을 꽂아버리고는 먼저 차로 돌아가버린다.

 

이 장면에서 나는 Eva가 케빈의 적대적인 배척에 의한 피해자만은 아니라는 것과, 케빈에게는 늘 엄마가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막말을 하는 것처럼 느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Eva는 너가 태어나기 전 엄마는 훨씬 더 행복했단 말을 어린 케빈에게 했던 적이 있었다. 그 후로도 비록 말로 표현을 하지 않았을지언정, 비언어적 표현을 통해 케빈이 엄마에게 자신은 편한 존재,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느끼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케빈이 뱃속에서부터 엄마의 의무적인 사랑이 아닌, 가슴에서부터 끌어오르는 '모성애'를 받지 못했다는 부분, 케빈이 엄마에게 애정의 부산물이 아닌 짐처럼 느껴졌다는 부분, 또 실리아와 케빈을 대하는 엄마의 사랑이 달랐고 그것을 케빈이 목도하며 자랐다는 점 등 엄마 Eva의 정서적 학대와 외면이 케빈을 악인 범죄자로 만드는 데 어느정도 일조를 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케빈의 범죄와 체포를 보고 돌아오는 Eva를 비춰주며, 이 노래가 나오는데 가사가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I'm nobody's child, I'm nobody's child
I'm like a flower just growing wild
No mommy's kisses and no daddy's smile
Nobody wants me, I'm nobody's child


나는 이 노래야말로 케빈의 주제곡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누구의 아이도 아니에요. 나는 야생에서 자라나는 꽃과 같죠. 엄마의 키스도, 아빠의 미소도 없어요. 누구도 나를 원하지 않고, 나는 누구의 아이도 아니에요.


(가사 전체 : http://lyrics.wikia.com/wiki/Lonnie_Donegan:Nobody's_Child 참고)

 

 


영화를 보다보면 케빈이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결정적 계기가 나온다. 실리아가 한쪽 눈을 실명한 사건으로 결국 소원해진 프랭클린과 Eva가 '일단 학기가 끝난 후 (이혼을) 해치워버리자'는 이야기를 케빈이 오해한 것이다.


 

두 부부가 케빈에게 제대로 해명을 했더라면 며칠 후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케빈은 부모가 자신을 '해치울' 거라고 오해하고, 버림받기 전에 버리겠다는 결심으로 범행을 계획했던 것 같다.


케빈이 아빠 프랭클린을 사랑했을까에 대해서는 나도 확신이 없다. 아빠와 잘 어울리고 아빠 앞에서는 얌전하고 착한 아들 노릇을 했지만, 그것이 엄마를 약올리기 위한 쇼였을까, 아니면 자신을 사랑해주는 아빠에게 일말의 애정 정도는 존재했을까?


아빠를 사랑했다면, 그랬기 때문에 자신이 버림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더 크지는 않았을까?


싸이코패스라고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고통이나 아픔에 공감을 못하는 것일 뿐, 자신의 아픔이나 감정에 대해서는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케빈이 싸이코패스라면 얼추 들어맞는 해석이 아닐까? 사랑했던 아들에게 배신당해 죽는 아빠의 고통보다, 자신이 버려질 것이라는 두려움과 고통에 집중해서 버림받기 전에 버린다는 결심으로 행한 끔찍한 범행.


나는 저 장면에서도 케빈이 여전히 사랑을 갈구했지만, 끝내 배신당했다고 생각해 모든 것을 끝장내버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3. 모성애는 당연한 순리이며 의무인가?

 

 

하지만 엄마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자신에게 늘 비협조적이고 보란듯 자신만을 싫어하는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모성애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일까?


 


케빈은 엄마를 괴롭히기 위해 일부러 증오하는 엄마를 뺀 모든 대상을 죽였다. 엄마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파괴한 것이다.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이, 그리고 무고한 학생들을 죽임으로써 엄마 Eva는 홀로 마을 사람들의 적의를 감당해내야 했다. 길을 가다 뺨을 맞기도 하고, 집과 차에는 새빨간 페인트가 뿌려져있기도 하다. 죄인처럼 마트에서 식료품을 사다가도 사람을 피해 도망다니고, 일부러 깨놓은 계란을 사가서 달걀껍질이 씹혀 나오는 스크램블 에그를 의무처럼 씹어 삼킨다. 그녀가 사랑한 모든 것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이런 고통을 감내해야할만큼, Eva가 잘못한 것일까? 엄마로서 자녀에게 애정을 주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 그렇게 큰 죄였을까?


부모로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지만, 과연 사랑이 이성으로 조절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인가? 만약 부모가 자식을 마음으로부터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부모의 원죄가 되는 것인가?


 

극한상황에서 모성애와 자기보호본능이 충돌할 때 과연 사람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대한  끔찍하면서도 유명한 실험이 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나치가 유태인 수용소의 엄마와 아들에 대해 한 실험과 일본 731부대의 실험이 바로 그것이다.

 

첫번째 나치의 실험에서 나치는 바닥에 철판을 깔고 사방에 유리를 두른 통 안에 자신의 아기를 안은 유태인 여성을 맨발로 들여보냈다. 그리곤 철판바닥 아래에 서서히 열을 가하면 철판이 달아올라 발바닥이 짓무르다 못해 타들어간다. 견딜 수 없이 방이 뜨거워지자 결국 엄마가 아이를 밟고 그 위에 올라섰다고 한다.

 

두번째 일본의 731부대 실험에서도 아이와 엄마를 한 방에 넣고 계속해서 물을 채워넣었을 때, 결국 엄마가 아이를 밟고 올라서 숨을 쉬었다.

 

끔찍하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모성애가 자기보호본능을 이기지 못했다는 결과이다.


 

아이를 가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Eva에게, 갑작스러운 임신은 자신의 세상을 완전히 뒤바꿔버린 큰 사건이었고 그러한 상실의 아픔으로 모성애를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Eva
가 케빈을 사랑할 수 없었다고 해서 케빈을 방치하거나 신체적으로 학대하지도 않았다. Eva는 나름대로 케빈의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에바의 노력이 자녀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모성애가 아닌 것일까? 모성애의 범위는 어디부터 어디까지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일까.

 

 

이 가족의 비극사를 지켜보며,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부모 자식 관계와, 모성애라는 것에 대해 낯선 시선으로 다시 한 번 의문을 던져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케빈이 싸이코패스가 아니었다면 더 신선하고 좋았을 것 같지만, 만약 그랬다면 이 영화가 주는 메세지와 물음표가 극대화되지 못했을 것 같기도 하다.

 

 

 

 

케빈은 "그곳에서는 행복하냐"는 엄마의 질문에, "내가 언제는 행복했던 적이 있었던가?"하고 대답했었다. 엄마와의 어긋난 관계속에서 케빈 역시 순수히 가해자로서 남을 수만은 없었다는 뜻이다. 케빈도, Eva도 모두가 불행했다.

 

 

 

"왜 그랬냐"는 마지막 질문에, 이제 곧 성인 교도소로 이감되는 케빈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지금까지는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라고 대답한다. 이 결말에 대해 나도 아직은 명확히 해석이 되지는 않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두 모자의 관계가 조금은 변하지 않았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을 품었다. 엄마 Eva는 케빈의 옷을 정성스레 빨고 다려 옷장에 넣어놓고, 케빈이 다시 돌아올 것처럼 침구를 깔끔하게 정돈한다. 케빈 역시 그동안 몇 번의 면회 동안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눈을 들어 엄마와 드디어 마주 본다. 그것은 Eva도 마찬가지다. 케빈이 열 손가락 손톱을 모두 물어뜯을 때까지 어색하게 비껴앉아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마지막에서는 어색하게 양 팔을 들어 케빈을 꽉 끌어안는다. 두 모자 사이에서 처음으로 감정이 통한 부분이라고, 개인적으로 해석했다.

 

케빈이 출소한 후에는 케빈도, 엄마 Eva도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드디어 마음을 연 케빈이 Nobody's child가 아닌 Eva's child로서, Eva는 Kevin's mother로서, 드디어 서로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면서.

 

Good day, Kevin. Be happy, Eva.





+) 영화에 대한 해석과 분석이 잘 되어있는 글을 발견해서 링크합니다. 한 번 읽어보세요.


1.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best&no=949996


2. http://blog.naver.com/willbefree/140164998971



Leon, The Professional

2015. 8. 22. 17:51 | Posted by 도유정






Leon, The Professional





감독 : 뤽 베송

배우 : 쟝 르노, 나탈리 포트만, 게리 올드만

상영시간 : 133분

별점 : ★★★★★


한줄 평가 : 숙녀같은 아이 마틸다, 아이같은 킬러 레옹, 킬러같은 경찰 스텐스의 3중주

(출처 : 네이버 영화 '레옹'의 리뷰/평가. 아그라마님.)




이보다 더 적절하게 레옹을 표현하는 한줄 평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 아그라마님의 표현을 빌린다.

 

 

 

 


 









1. 그 남자의 삶은 단조롭다




19살 때 프랑스에서 첫 살인을 하고, 미국으로 건너와 킬러로 일하고 있는 남자, 레옹.


일을 할 때는 누구보다 차갑고, 비정하며 단호하다. 초반 마피아를 손봐 달라는 의뢰를 받고 그의 부하들을 하나 둘씩 깔끔한 솜씨로 처리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프로(the professional)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기관총을 들고 있는 마피아의 부하들을 모두 처리하고, 어둠 속에서 빛이 번쩍이는 나이프를 든 손이 스윽 등장하는 장면은 잔혹한 킬러 레옹의 모습을 압도적으로 보여주는 씬이었다.




그러나 킬러가 아닌 인간으로서 레옹의 삶은 고독하고, 우울하며, 단조롭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고통을 감내하는 듯한 표정으로 샤워를 하고 우유 한 잔을 마신다.


그의 식탁에는 늘 우유 두 팩이 상비되어 있다.


이 우유 역시 레옹의 자라지 못한 내면을 상징하는 장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토니가 술을 마실 때에도 레옹은 늘 우유를 주문하고, 우유를 제외한 커피나 주류는 마시지 않는다.




그의 유일한 취미 생활은 오래된 흑백 뮤지컬 영화 감상. 우울한 듯 고요하고 단조로운 삶을 이어나가는 레옹도, 영화를 볼 때만은 아이처럼 천진하게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인다.


비록 영화가 지루해 관객 수가 극히 적고, 그나마 있는 사람들도 졸고 있지만 레옹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난 것을 보는 사람처럼 순수하게 즐거워한다.



레옹의 유일한 친구는 그가 우유 두 팩과 함께 늘 들고 다니는 화분.


아침이면 늘 창을 열고 화분을 햇볕에 내어 두었다가, 밤이 되면 다시 집 안으로 들여놓으며 애지중지한다.








레옹은 화분을 best freind 라고 표현하는데, 화분은 레옹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다.


뿌리가 없는 삶.


레옹은 19살 때 첫 살인을 저지른 이후, 늘 떠돌아 다닐 준비를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나가고 있다. 그의 인생에는 친구도, 사랑도, 가족도 없다. 총과 우유 두 팩, 화분을 들고 그는 정처없이 세상을 떠돈다.


레옹에게는, 그를 받아주고 지탱해 줄 땅이 없기 때문이다.



 

 

마틸다는 그런 레옹을 보며 정말 사랑한다면 공원에 심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린 소녀의 당돌한 말에 레옹은 당황하며, 어물어물 수긍하고 만다.





2. 단조로운 킬러의 삶에 찾아온 한 소녀




레옹이 살고 있는 싸구려 아파트. 길고 긴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언제나 한 소녀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아빠에게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소녀의 눈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다. 어쩌다 생긴 상처냐고 묻는 레옹에게, 소녀는 자전거를 타다 넘어졌다고 말하지만 레옹은 학대와 폭력의 흔적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레옹은 모른 척한다. 소녀는 레옹이 책임져야 할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코피를 흘리는 소녀를 지나치지 못하고 손수건을 건네는 레옹에게, 소녀는 물었다.





삶이 언제나 가혹한가요, 아니면 어린 아이에게만 그런가요?


레옹은 대답했다. 언제나 그렇지.


어린 아이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소녀는 조숙하다. 소녀의 고된 삶이 소녀가 아이일 수 없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창녀 같은 새엄마, 폭력을 휘두르는 마약상 아빠, 못된 이복언니. 소녀의 유일한 가족은 자신을 늘 위로해주는 4살배기 어린 남동생 뿐이다.

 

12살 난 소녀는 학교도 가지 않고, 늘 아파트 계단 복도에 앉아 담배를 태운다. 흘러가는 담배 연기 속에 자신의 동심과, 꿈과, 고된 삶을 함께 태우고 있을 소녀의 얼굴은 쓸쓸한 노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자신에게 친절을 베푸는 레옹에게 삶에 대해 물을 때는 새파랗게 날이 서 있기도 하다.

 

소녀의 얼굴 그 어디에도, 어린아이의 표정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기에는 그녀에게 삶은 너무 가혹하고 고된 탓이다.



다음날, 마틸다가 식료품을 사러 나간 사이 약을 취급하는 부패 경찰 스탠스필드 일당이 마틸다의 집을 습격한다. 공급받는 약의 순도가 점점 떨어진다는 이유로, 중간 마약상인 마틸다의 아버지와 그 일가족을 본보기 삼듯 참살한 것이다.

 

 

 

 

뽕맞은 게리옹의 연기.

 

알약 형태로 되어있는 마약을 오독오독 씹어 삼키고 나서 몸을 풀며 마치 오르가즘을 맞는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는데, 눈이 몽롱하게 풀리며 나른하게 변하는 연기가 일품이다. 진짜 뽕 맞은 줄 알았다.


게리 올드만을 처음 본 것은 어렸을 적 Air Force One (에어포스 원)의 악역 연기에서였는데, 레옹의 스탠스필드에 비하면 에어포스원의 발레라는 귀여운 수준이구나 싶었다. 고상하게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거짓말의 냄새를 맡는 등장부터 범상치 않다 싶더니, 완전 싸이코가 따로 없었다.


음악을 지휘하듯, 왈츠를 추듯 경쾌한 손놀림과 걸음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와 망설임 없이 사람을 쏴죽이는데 나는 처음에 스탠스필드가 무슨 마피아 일당인 줄 알았다.


그런데 경찰이었어. 헐.

 








 



레옹에게 사다줄 우유 두 팩을 사들고 들어오던 마틸다는, 기민하게 분위기를 감지하고 자신의 집이 아닌 것처럼 집을 지나쳐 레옹의 집 초인종을 누른다. 그녀의 집 앞에서 보초를 서던 남자가 수상쩍게 쳐다보자, 눈물을 흘리며 제발 문을 열어달라고 사정하고, 레옹은 결국 그녀를 받아들여 마틸다를 구해준다.

 

 

 

 

마틸다는 자신이 유일한 가족으로 여겼던 남동생을 죽인 스탠스필드 일당에게 복수하기 위해, 레옹에게 계약을 제의한다.


영어를 쓰고 읽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레옹을 위해 집안일도 하고 영어도 가르쳐줄테니, 자신에게 cleaner(킬러)로서의 이론을 가르쳐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소녀의 당돌한 요구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막무가내식 행동, 간간히 엿보이는 여린 모습에 레옹은 결국 마틸다를 받아들이고 만다.

 

 

 


어른의 외면을 한 아이같은 킬러 레옹, 아이의 외면을 한 어른 같은 소녀 마틸다.


그렇게 두 사람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3. 무채색의 삶을 색색깔로 물들이는 나비 같은 소녀, 그리고 레옹 



당돌한 소녀 마틸다는 단조롭고 고요했던 킬러의 삶에 저벅저벅 걸어들어와, 남자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늘 일만 하면 지루하니 게임을 해보자며, 기상천외한 옷을 입고 나타나 누군지 맞춰보라고 하며 레옹의 얼을 빼놓거나.


 




 

 

레옹과 사랑에 빠졌다며 느닷없이 사랑을 고백해와 레옹이 우유를 뿜게 만들기도 한다.

 




레옹이 How do you know it's love if you've never been in love before? (한 번도 사랑에 빠져본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이게 사랑인 걸 아니?) 라고 묻자 마틸다는 'Cause I feel it. 이라고 대답한다. 레옹의 Where? 라는 물음에 마틸다는 In my stomach. It's all warm. I always had a knot there, and now it's gone. 라고 대답하며 자신만의 사랑의 정의를 거침없이 표현한다.






무채색이었던 외로운 킬러의 삶은 마틸다가 채워넣은 색색깔의 기묘한 느낌들로 물들어가기 시작한다. 그가 돌아오면 그를 맞이해주는 사람이 있고, 그의 화분을 돌봐주고, 때로는 사고를 쳐서 다른 숙소로 이동하게 하기도 하지만, 레옹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과 경험들로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한다.


그 변화가 레옹에게 좋은 것일까.


그의 일을 중개해주는 브로커이자 그가 받아야할 돈을 자칭 대신 관리해주는 토니는, 변화는 좋은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변화는 그를 약하게 만들고, 더 이상 최고가 아니게 될 거라고.

 

일을 할 때 외에는 어린아이처럼 어수룩하고 사람과의 교류가 익숙하지 않은 레옹은, 답을 알 수 없다.
 

 

늘 혼자였고 혼자인 게 익숙했던 레옹은 낯선 변화에 휩쓸려 가다가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자 거세게 저항하기도 한다.

 



 

마틸다를 구해준 날 밤 그녀를 죽이려고도 해봤고,  





소녀의 고백을 "I'm late for work. I hate being late for work." 라는 말로 황급히 피하고는 문을 나선 뒤 벽에 머리를 기대며 고뇌하기도 한다.


레옹에게 2만불을 건네며 자신의 남동생을 죽인 스탠스필드 일당에게 복수해달라는 소녀의 요청을 거절하며 잊어버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마틸다는 자신이 이기면 레옹이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고, 진다면 레옹은 평소처럼 혼자서 쇼핑을 할 수 있게 될 거라며(자신이 죽으면 레옹이 다시 혼자가 될 수 있다는 뜻) 두번째 게임- 러시안 룰렛을 제안한다. 레옹은 총알이 걸리는 소리를 들었다며 네가 질 거라고 말하지만, 당돌한 소녀 마틸다는 사랑이 아니면 죽음을 원한다며 레옹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방아쇠를 당긴다.

 

 

 

 

 


결국 레옹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마틸다의 팔을 쳐내 총알을 빗겨나가게 만든다.

 

마틸다는 자신이 이겼음을 선언하고, 레옹은 결국 마틸다를 완전히 받아들이게 된다.

 

 

 

 

 

 

마틸다를 데리고 토니에게 가 정식으로 소녀를 소개하고, 자신이 일하는 곳에 데려가 기술을 가르친다. 어떻게 문을 따고 확인 사살로는 어느 부위를 쏘아야 하는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 소녀는 레옹을 따라다니며 모든 것을 배우고 흡수한다.

 

토니에게로 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마틸다에게 그가 벌었던 돈을 전부 주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4. 아이의 모습을 한 어른 마틸다, 어른의 모습을 한 아이 레옹

 

 

일할 때에는 누구보다도 냉혹하고 자비 없는 킬러지만, 레옹은 첫 살인을 저질렀던 19살 이후로 자라지 못한 어리숙한 아이 같은 남자다.


누가 봐도 12살에 불과한 마틸다의 18살이라는 거짓말을 혼자서만 믿는 면이나, 모두가 지루해하는 인기없는 흑백 뮤지컬 영화를 입 벌리고 보는 모습, 브로커 토니에게 그가 벌어 온 돈에 대해 변변히 말하지도 못하는 어수룩한 모습, 일할 때 비니를 쓰는 이유가 감기에 걸릴까봐라고 말하는 장면, 마틸다의 거침없는 고백과 언행에 어쩔줄을 몰라하는 모습은 레옹의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 같은 내면을 보여준다.

 


 

 





영화 중반에 보면 레옹이 너와 함께 다니며 감이 떨어졌다고 혼자 일을 나간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 레옹은 마틸다에게 "You need some time to grow up a little."라고 말한다. 마틸다가 I finished growing up, Leon. I just get older. (난 이미 다 자랐어요, 레옹. 그저 나이만 먹으면 돼요.)하고 대답하자 레옹은 "For me it's the opposite. I'm old enough. I need time to grow up." (나와는 반대로구나. 나는 나이 먹을만큼 먹었지만 아직 더 자라야 하는데.) 라고 말한다.

 

어린 아이의 외면을 한 어른 같은 마틸다와, 어른의 외면을 하고 있지만 속은 미성숙한 어린아이인 레옹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런 미성숙한 레옹의 모습은 그의 상처로부터 기인했다.

 

돈을 건네며 복수를 의뢰하는 마틸다에게 레옹이 "Revenge is not good once you're done. Believe. It's better to forget."(복수는 이루고 나면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지 않아. 잊는 게 나아.)"라고 말하며, 한 번 사람을 죽이고 나면 그 때부터 인생이 바뀌고 만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레옹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홀로 스탠스필드를 죽이러 경찰청 건물에 들어갔다가 도리어 잡힌 마틸다를 레옹이 구해낸 날 밤, 마틸다는 레옹이 사준 옷을 입고 레옹과 첫 경험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것을 거절하며 이유를 묻는 마틸다에게, 레옹은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며 눈물을 흘린다.


프랑스에서 나고 자랐던 레옹이 19살이었을 때, 레옹은 사랑하던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매우 좋은 집안의 딸이었는데 레옹이 그녀와 만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던 여자의 아버지가 어느날 딸의 머리에 총을 쏴 딸을 죽이고 말았다. 그러나 감옥에 들어갔던 남자는 단 이틀 후에 풀려나왔다. 사고였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레옹은 남자가 풀려난 날 밤, 총을 들고 가 남자를 똑같이 '사고로' 죽인 후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 날 이후, 레옹은 단 한 번도 이 도시를 떠나지 않고 킬러로서 토니를 위해 일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우유 한 잔을 마시며 담담히 그의 과거를 고백하는 레옹의 눈물은, 그의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회한, 지울 수 없는 상처, 그 이후로 자라지 못한 내면의 여린 모습,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그의 아픔이 모두 녹아든 것이었다.


이에 마틸다는 대신 침대에서 함께 자자고 말한다. 마틸다를 침대에서 재우고 늘 불편하게 의자에 몸을 구겨넣고 자는 모습이 지긋지긋하다며, 어색해하는 레옹을 억지로 눕히고 그의 신발을 벗겨 이불을 덮어준다.




 


 

그 날 밤, 레옹은 19살의 밤 이후 처음으로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항상 한 쪽 눈을 뜨고 선 잠을 자던 레옹이 코까지 골며 숙면을 취했던 것이다. 레옹은 이런 자신의 변화가 어색하지만 전처럼 소녀를 밀어내지 않는다.

 

마틸다가 다가서는 만큼 뒤로 물러서거나, 소녀를 밀어냈던 레옹이 처음으로 그녀를 온전히 받아들였던 날 밤. 얼어붙은 채 그 어떤 희망의 씨앗도 틔우지 못했던 레옹의 동토(冬土)에 봄이 찾아들고 있었다.


 

 

 

5. 새 희망의 지평선에 불어온 바람, 그리고 약속

 

 

 

 

그러나 그들의 행복은 단 하루도 가지 못했다.

 

자신과 연관된 마약상들이 모두 죽음을 당하고, 자신의 사무실에 그 킬러가 직접 찾아와 부하들을 죽이고 마틸다를 빼간 사실에 분노한 스탠스필드가 직접 토니를 찾아가 킬러의 소재지를 물은 것이다.

 


 

스탠스필드의 협박에 토니는 레옹의 거처를 말해버리고, 그 날 아침 우유를 사러 나갔던 마틸다는 숙소를 포위한 SWAT에게 붙잡히고 만다.


 


노크 암호가 있냐는 말에 마틸다는 '응급상황'을 뜻하는 노크를 가르쳐주고, 그녀의 말을 믿은 특공대가 노크후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간 순간 방에 들어섰던 1분대가 준비한 레옹에 의해 모두 전멸하고 만다.


소식을 들은 스탠스필드는 200명에 달하는 SWAT 전 대원을 투입하라고 명령한다.





게리 올드만의 연기가 압권. 플짤만 봐도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게리 올드만은 완벽하게 그 캐릭터에 녹아들어서 머리카락 한 올부터 발 끝까지 모두 그 사람이 되어 연기하는 느낌이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부패 경찰 스탠스필드의 광기 어린 표정과 행동이 영화를 빛냈다.

 

 

전 경찰 병력의 화력에 레옹은 배기구를 부숴 좁은 통로로 마틸다를 탈출시키려 한다.


혼자서는 가지 않으려는 마틸다에게, 레옹은 그의 얼어붙은 땅 위에 작게 솟아난 희망의 새싹을 고백하며 소녀를 보낸다.


I know I've got a lot of money with Tony. We will take it and leave together, just the two of us. You've given me a taste of life. I wanna be happy, sleep in a bed, have roots. You'll never be alone again. 토니에게 맡겨둔 돈이 아주 많아. 그걸 가지고 함께 떠나자, 단 둘이서 말이야. 네 덕분에 삶이 뭔지도 알게 됐어.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침대에서 자고, 뿌리도 내리고. 넌 다시는 혼자가 되지 않을 거야.











끈질기게 사랑을 고백할 때마다 소녀의 고백을 부인하고 회피했던 레옹은, 최후의 순간에서야 마틸다에 대한 사랑을 인정하고 고백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삶에 대한 진정한 희망을 품었다.


그렇게 소녀를 떠나보내고, 레옹은 절규하듯 울부짖는다.

 

화면이 바뀌고, 레옹과 마틸다를 찾으러 들어온 SWAT은 그들의 복장을 하고 있는 한 생존자를 발견하고 그를 아래층으로 구출해 데려간다.

 

그 대원의 정체는 레옹. 특수부대원의 옷을 빼앗아 입고 대원인 척 가장해 건물을 빠져나가려는 계획이었다.  

 

 

 

그의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수많은 병력이 투입된 탓에 낯선 그의 얼굴을 보고서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래층에서 지시를 내리던 스탠스필드가 레옹의 얼굴을 목격하고 만다.

 

 


레옹임을 확신하고 희열에 찬 표정으로 바뀌는 스탠스필드의 얼굴. 섬뜩한 광기가 묻어나온다.

 








단 몇 발자국만 더 걸어가면 마틸다와 약속한 희망의 땅이 있다. 늘 고독하고 떠돌아다니던 삶을 청산하고, 마틸다와 함께 침대에서 잠들고 뿌리를 내리는, 인간다운 삶이 그의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언제나와 같은 어리숙한 표정이지만, 고통과 피로로 몽롱해진 눈에는 새 삶에 대한 희망이 어려있다. 어둡고 고요한 건물 안, 들리는 것은 그 자신의 거친 숨소리 뿐. 건물의 어둠 속에 잠겨 있다 점차 빛을 향해 나아가는 레옹의 모습은 길고 긴 과거의 어둠 속을 지나 마틸다와 함께 하는 미래로 걸어가는 그의 인생과도 닮아있다.






 

 

그러나 단 몇 걸음을 남겨두고, 레옹의 시야는 무너지고 만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빛이 있는데, 무릎이 꺾인다.

 

 

 


 

 

 

총에 맞고 쓰러진 레옹의 위로 스탠스필드가 서자, 레옹은 그의 이름을 부른다. 특유의, 어눌한 영어 발음으로.

 

 

 

 


끝까지 주먹을 펴지 않던 레옹은, 피묻은 손으로 더듬거리며 스탠스필드의 손 안에 무언가를 쥐어 준다.


마틸다로부터, 라는 말을 남기고 눈도 감지 못한 채 죽어버린 남자를 잠시 보다 스탠스필드는 손 안의 내용물을 확인한다.


 

 


쥐어져 있던 것은 폭탄의 핀.


남자는 그가 살아 걸어나가지 못할 순간까지 대비해, 온 몸에 폭탄을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폭발.


남자의 희망과, 고통, 이루지 못했던 마틸다의 복수를 삼킨 거대한 불길이었다.

 

 


 

한편, 마틸다는 무사히 통로를 빠져나와 화분과 토끼 인형을 들고 건물을 빠져나간다.

 


 

검댕도 채 지우지 못한 눈물 젖은 얼굴로, 레옹이 만나자고 한 토니의 가게에서 레옹을 기다리던 마틸다.

 

소녀에게 전해진 것은 폭발사고의 비보였다.

 

레옹의 죽음을 암시하며, 토니는 레옹의 유언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그가 번 전 재산을 마틸다에게 주라는 말과 달리 토니는 레옹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은행 대신 돈을 맡아준다며 똑같은 수작을 부린다.

 

어리숙한 레옹이 영어 문서를 작성할 줄 모르며, 관공서의 일에 익숙치 않다는 점을 이용해 그의 돈을 맡아 관리하던 토니는 마틸다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의 돈을 마틸다에게 주지 않는다.

 

 

 

 

 

 

레옹처럼 일을 할 수 있으니 일을 소개시켜 달라는 마틸다에게, 토니는 이 미친 짓거리들은 모두 잊으라며 학교로 돌아가라며 소리친다. 마치 거지에게 적선하듯 100달러만을 건네며 다음달까지 얼굴을 들이밀지 말라는 토니를 바라보다, 마틸다는 아무말 없이 가게를 나온다.

 

번화한 거리의 밤, 소녀가 갈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고아가 된 소녀를 받아주고 지켜줬던 남자, 함께 떠나 뿌리를 내리자고 약속했던 남자가 세상에 없기에.

 

 

 

 

 

 

케이블카를 타고 도심을 지나, 건너편 교외 공원지역에 위치한 학교로 돌아간 마틸다.

 

솔직하게 말해달라는 선생님에게 그간의 사정을 말한 마틸다는, 남자에게 말했던 것처럼 학교가 그녀를 받아주지 않으면 오늘밤 자신은 죽는다고 말한다.

 

소녀가 했던 거짓말보다 더 거짓말 같았던 남자와의 생활. 바로 하루 전 미래를 약속했던 남자를 잃고 모든 뿌리를 잃은 소녀와는 달리, 세상은 여전히 평온하고 바쁘기만 하다.

 

마틸다는 남자가 부탁한 화분을 들고 나와, 양지바른 곳에 화분을 심는다. 소녀를 만나기 전까지 야트막한 도기 속에 갇혀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화분처럼, 세상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삭막한 도시를 떠돌았던 레옹.

 


 

 





정말 사랑한다면, 공원에 심어 뿌리를 내리게 해야 한다는 본인의 말을 지키듯 소녀는 정성스레 땅을 파 화분의 식물을 심어준다.


"I think we'll be okay here."라는 말과 함께.


마치 이 생에서는 이어지지 못한 남자의 뿌리내린 삶을 대신하듯.


죽어서야 함께 하게 된 남자는, 소녀의 가슴 속에 뿌리내려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다.





 

6. 감상

 

 

 

레옹을 감상하기 전에, sting의 shape of my heart를 먼저 접했었다. 정성하의 유튜브 동영상을 구독하여 보던 중 정성하가 올린 shape of my heart 의 핑거스타일 편곡 연주 영상을 보고 노래에 빠져들었다. 특유의 쓸쓸한 목소리, 우수어린 멜로디, 가사. 노래를 좋아하다 보니 이 곡이 그 유명한 영화 레옹의 엔딩곡이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레옹에 관심이 갔다.


사실 너무나도 유명한 영화라 언젠가는 봐야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최근 무한도전 가요제 편에서 박명수와 아이유가 레옹과 마틸다 컨셉을 잡았다는 것을 보고 시간이 난 김에 마음 먹고 보게 되었다.


니키타, 테이큰, 루시 같은 유명한 킬러/액션 영화의 제작 감독에 참여한 뤽 베송의 대표작답게, 영화는 오래된 제작연도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영상과 미쟝센을 선보인다.


주인공 레옹은 영화가 시작된 지 7분여가 지나서야 그 얼굴을 완전히 드러내는데, 그 짧지 않은 시간을 전혀 지루하다고 느낄 틈도 없이 잔혹하고 깔끔한 살인이 줄을 이어 등장한다. 지루하게 그저 총을 쏴대고 주인공은 모든 총알을 빗겨나가는 유치한 액션 영화처럼이 아니라, 갈고리로 채어 계단 아래로 집어 던지거나 위에서 교수형 밧줄을 던져 목을 매달아 죽이거나, 천장에서 거꾸로 튀어나와 총을 쏴 죽이는 킬러 특유의 프로페셔널한 살인 방식을 보여준다.


특히 레옹이 완전히 등장하는 나이프 장면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보는 동안 덜덜 떨었을 정도였다. 등 뒤의 어둠 사이로 번쩍이는 나이프와 함께 하얀 손이 스윽하고 튀어나와 목을 감싸는데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냉혹한 킬러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으로, 레옹이라는 한 인간의 삶은 너무나도 고독하고 단조롭다. 잔혹하고 단호한 살인 방식과는 달리 그는 미성숙하고 어리숙한 내면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남자다. 겨우 열두 살밖에 되지 않은 마틸다에게 번번이 휘둘리고, 그러다 결국 그녀의 끈질긴 말대로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버리는. 오랜 상처를 마침내 덮고, 마틸다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며, 이 영화는 마틸다를 내세운 레옹의 성장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지워지지 않는 날카로운 상처를 가슴에 품고 서로 함께 하게 되는 마틸다와 레옹은, 몸에 돋은 가시로 서로를 찌르고 있는 장미 두 송이와 같다. 어느날 그의 삶으로 뛰어든 고아 소녀 마틸다는 자꾸만 고독에 익숙해졌던 레옹의 약한 내면을 끄집어 내고, 거침없이 사랑을 고백하는 소녀를 보며 레옹은 오래전 그가 사랑했던 한 여자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그의 복수를 떠올린다.

 

옛 연인의 죽음과 그에 대한 복수는 레옹의 삶에 있어 지워지지 않는 낙인과도 같은 상처다. 그 복수로 어리숙하고 천진했던 소년 레옹은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킬러가 되었고, 그 누구도 곁에 둘 수 없는 겁쟁이가 되고 말았다. 사람이 뿌리내릴 수 없는 그의 얼어붙은 땅 위에서 외로운 그의 곁을 지키는 건 아무런 불평도 할 수 없는 작은 화분 하나 뿐이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않는 화분은 레옹의 쓸쓸하고 정처없는 삶을 대변하는 소품이다.


직업과는 달리 레옹은 살인을 즐기지 않는다. 샤워를 하며 고해성사를 하듯 욕실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녹초가 된 몸을 맡기는 남자의 표정은 고통스러워 보인다. 고요한 집 안 우유 두 잔을 마시고, 스위치를 내려 어둠이 드리워진 거실 속 소파에 고요히 몸을 기대는 남자의 모습은 단조롭고 고독한 그의 삶의 모습 그대로이다.

 

지루한 흑백 영화를 입을 벌리고 바라보는 어리숙한 남자가 그토록 무감정하게 살인을 직업으로 삼기까지, 얼마나 많은 회한과 고통이 그의 동토 위로 불어닥쳤을까.

 

남자의 깊은 상처 위로 쌓이고 쌓인 외로움은 너무나도 두터워서,겁쟁이인 남자가 뿌리를 내릴 틈이 없었다.

 

보는 내내 나마저 남자의 고요하고, 고독한 삶에 침잠해가는 기분이었다.

 

그랬던 남자가 당돌한 소녀 마틸다를 만나 변해가고, 혼란스러워 하고, 화를 냈다가도 소녀의 무사함에 안도하며, bitter sweet한 삶의 여러 면을 맛보기 시작한다.

 

 

 

 


 

 

소녀를 밀어내던 내면의 저항이 사그러지고 그의 가장 아픈 상처를 내보였을 때, 레옹은 소녀에게 위로받는다. 죄책감과 회한, 두려움으로 편히 잠들지 못했던 레옹은 소녀가 눕히는 손길에 저항하지 못하고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늘 한 쪽 눈을 뜨고 잠들'기에 선잠을 자던 레옹은 난생처음 어린 아기처럼 코를 골며 잤다. 마틸다보다 늘 먼저 일어나 주위를 경계하고, 화분을 내다놓고, 운동을 하던 레옹은 심지어 마틸다보다 늦게 일어나기까지 한다. 레옹의 내면에 단단히 쌓여있던 고통과 두려움 등의 감정이 녹아내리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화에서 마틸다는 최악의 비극을 우유를 사러 나감으로써 회피하게 되는데, 그의 가족이 스탠스필드에게 참살당할 때 그랬고 레옹을 습격하려는 SWAT에게 붙잡힐 때도 그러하다. 마틸다가 그들에게 붙잡히지 않았더라면, 암호를 바꿔 가르쳐주지 않았더라면 레옹은 급작스러운 습격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허무하게 당했을지도 모른다.

 

비록 스탠스필드의 보복이 마틸다의 초조한 마음과 섵부른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을지라도, 레옹이 마틸다를 구하러 감으로써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마음을 열게 된다.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희망과 위기의 굴레다.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 통상적인 남녀의 사랑이라고 일컫기엔 다소 복잡할지도 모른다. 마틸다는 조숙하지만 한편으로는 여리고 위태로운 소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침대에 누워 레옹을 사랑한다고 느끼는 이유를 'knot in the stomach 배의 매듭'을 통해 고백할 때가 그렇다. 그것은 마틸다의 적극적이고 거침없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소녀로서의 순수한 일면을 나타내는 대사다.

레옹은 한 번 사랑을 했지만, 그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살인자가 되어 킬러의 길을 걸었다. 레옹에게 사랑이란 상처와 아픔, 회한을 주는 것이다. 연인 사이의 사랑 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지지 못할 정도로, 레옹의 상처는 깊다. 때문에 레옹은 거침없이 다가와 그에게 제 감정을 토로하는 마틸다를 밀어내고, 회피하고, 도망치려 했을지도 모른다.






마틸다는 초커를 목에 매고 있는데, 마치 롤리타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희고 가느다란 목선을 강조시켜 도착적인 여자로서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면서, 소녀와 여자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표현한다.





레옹에게 계약을 제안할 때나 그를 이용해 복수를 이루려고 할 때는 이렇듯 차가운 어른의 눈빛을 보이다가도,






최후의 순간에 레옹을 두고 떠날 수 없다고 흐느낄 때에는 어린 아이 같은 얼굴을 내보인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를 오가며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표현한 나탈리 포트만에게 새삼 경의를.

 

 

 


마지막 장면에서 마틸다가 화분을 땅에 심으며, you라는 표현 대신 we 라는 단어를 쓴다. ("I think we will be okay here.") 사랑한다면 공원에 심어 뿌리를 내리게 해야 한다는 본인의 말을 지킨 것인데, 화분과 레옹을 동일시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비록 레옹은 세상에 없지만, 소녀와 함께 뿌리내려 살아가게 될 것임을 상징한다.

 

무릎을 꿇고 화분의 식물을 땅에 심은 마틸다의 모습을 공중에서 비추던 화면은, 공원 건너편 도심의 스카이라인을 비추며 막이 내린다. 레옹이 갇혀 있었던, 죽어서야 나오게 되었던 차가운 도시를.

 

 

 

 

 


큰 키에 어리숙하고 순수했던 고독한 킬러와, 숙녀 같았던 소녀 마틸다는 내 마음 속에 뿌리내려 살아갈 것이다.


안녕, 레옹. 안녕, 마틸다.






 









감독 : 조지 밀러

극본 : 조지 밀러

상영시간 : 120분

총 평점 : ★★★★☆


- 액션 : ★★★★★

- 줄거리 : ★★☆☆☆


한 줄 리뷰 : 구원을 향해 일직선으로 내달리는 파괴적인 마초적 영상미



<스포 주의>

매드 맥스 원작이나 기존 세계관에 대한 어떠한 기초지식 없이, 오직 분노의 도로 영화만 보고 남기는 리뷰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1. 강렬하고 파괴적인 액션이 선사하는 시청각 쇼크




영화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인 파괴적이고 강렬한 시청각적 유희를 선사하고자 일직선, 단선적인 줄거리 라인을 따라 달리고 또 달린다.


22세기, 핵 전쟁과 자원 고갈로 세계는 멸망했다. 인류는 물과 기름, 식량을 두고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고 살아남은 신인류는 각자 집단을 이뤄 다른 부족을 약탈하고 착취하며 살아간다. 독재자 임모탄은 물과 기름, 식물을 독차지하고 세뇌된 전사 '워보이'를 통해 시타델에서 철혈의 독재를 펼친다. 임모탄은 건너편의 가스 공장과 무기 공장으로 사령관 퓨리오사를 보내 군수물자를 수송하게 하려했으나, 그의 아이를 밴 '부인들'을 데리고 퓨리오사가 탈주했다는 것을 알고 시타델의 전 부대를 출동시켜 퓨리오사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주인공 맥스(톰 하디)는 그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않은 남자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은 모종의 이유로 지켜주겠다 약속했던 가족들을 모두 잃었고,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신을 원망하는 죽은 가족들의 환영에 시달린다. 동시에 황폐해진 땅을 지배하는 시타델의 워보이들에게 사냥당하며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에게 위협받는 신세다.







초반에 방사능에 노출되어 돌연변이가 된 쌍두 도마뱀을 간지나게 밟아 한 입에 씹어 드시며 카리스마를 발산하나 했더니, 등장 1분도 되지 않아 워보이들에게 사냥당해 '피주머니'로 전락하고 만다.


임모탄의 본부 시타델은 전형적인 피라미드 구조의 독재정이다. 최상위 계층에 철혈의 독재자 임모탄이 있고 그 아래에 방사능에 노출되어 기형이 된 그의 아들들을 비롯한 워보이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최하층 계급에 착취의 대상이 되는 우민들이 있다.


임모탄은 물과 식량을 관리하고 배분하면서 우민들을 다스리고, 시타델의 인류를 쓰임에 따라 분류하여 '사용'한다. 시타델에서 임모탄을 제외하면 누구도 사람으로서 대접받지 못한다. 풍만한 여자들은 '모유 공장'에서 젖을 생산하고, 방사능에 노출되지 않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미인들은 임모탄의 씨받이로서 건강한 후계자를 생산해야 한다.






노략당해 끌려온 맥스는 '피주머니'가 되어 암에 걸린 워보이 '눅스'(니콜라스 홀트)에게 산 채로 피를 수혈하게 된다.






맥스가 끌려온 지 며칠 후, 퓨리오사가 임모탄의 아이를 밴 부인들을 모두 데리고 탈주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분노한 임모탄은 시타델의 전 부대를 이끌고 추격에 나서고, 단단히 세뇌된 워보이 중 한 명인 눅스는 임모탄을 위해 제 한 몸을 불살라 천당에 드는 구원을 얻고자 피주머니를 매달고 출전한다.






눅스가 퓨리오사를 추격하는 와중에 차가 폭파되자, 맥스는 한숨 돌리고 있던 퓨리오사 일행을 총으로 위협하여 여정에 동행하게 된다. 죽은 줄 알았던 눅스 역시 몰래 차에 올라타 번번히 위협을 가하지만, 추격 과정에서 임모탄이 가장 아꼈던 부인 스플렌디드가 크게 다치자 마음을 접고 맥스 일행과 함께 하게 된다.


이 영화를 크게 반절로 나누면 임모탄의 추격에서 달아나 퓨리오사의 고향 green place를 향해 가는 여정, 그리고 고향 역시 황폐화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시타델을 접수하기 위해 도로 되돌아가는 여정 이렇게 반반이다.


전반부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희망의 땅 '어머니의 땅'을 향해 가는 여정은 쫓고 쫓기는 긴박한 추격전으로 눈을 뗄 수 없는 재미를 선사한다. 방사능 노출로 머리가 빠지고 피부가 창백한 신인류의 모습, 삐죽한 스파이크를 달고 창을 내던지는 전투 트럭, 화끈한 폭발씬, 드럼과 기타를 치며 퓨리오사를 뒤쫓는 워보이들은 강렬한 시청각적 충격을 제공한다.





매드맥스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인 빨간내복 기타맨ㅋㅋㅋㅋㅋ


처음에 임모탄이 출정할 때 선두에 서서 일렉기타를 쉴 새 없이 연주하는데, 황무지와 회색빛 자동차 사이에서 빨간색 옷을 입고 불이 뿜어져 나오는 기타를 연주하는 장면이 단연 눈에 띈다. 마치 그 옛날 오스만 투르크의 용맹한 군대가 출정할 때 군악대 메흐테르가 호전적인 행진곡을 연주하며 사기를 드높였던 것을 보는 기분이었다.










매드맥스는 시각적 자극의 끝을 보여준다. 거의가 황폐한 사막인 단순한 배경 위에서, 갖가지 특색을 띈 자동차들이 쉴 새 없이 질주하며 호시탐탐 서로를 노린다. 장대 끝에 매달려 창과 갈퀴를 들고 내다 꽂고 폭탄을 투하하며 화염방사기를 거침없이 난사해댄다. 곳곳에서 자동차가 뒤집히고 폭발이 일어나며 총과 전기톱, 칼이 등장한다. 그 모든 장면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눈 크게 뜨고 보고 있노라면, 호전적인 드럼 소리와 강렬한 일렉 기타 사운드가 지속적인 청각적 자극을 선사한다.


이토록 단순하고 직선적인 줄거리임에도 이 영화는 단 한 순간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인간은 자극에 빠르게 익숙해지는 동물이다. <킬 빌>과 <300>의 초반부에서 난무하던 신체 절단과 살인의 강렬한 자극도, 중반부로 가면 평이한 일상처럼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하지만 매드맥스는 영화의 도입부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초반의 강렬했던 자극이 시들해지는 바 없이 쭉 이어진다. 배경의 변화, 특색이 뚜렷하게 다른 무기와 자동차, 인물들로 결말부에 치닫는 그 순간까지도 영화는 액션 영화의 긴박한 자극을 끝까지 유지한다.




2. 구원(redemption)



이러한 마초적이고 강렬한 쇼크를 선사하는 파괴적인 액션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는 우스우리만큼 순진하고 순수하다.


바로 '구원'(redemption)이다.


임모탄의 후계자를 생산하는 '부인'으로서, 다섯 명의 첩들은 부족함 없는 생활을 누려왔다. 그들은 우민들처럼 물과 식량의 절대적인 궁핍으로 고통받지 않았고, 워보이들처럼 전투와 노략에 앞장서지 않았으며, 물을 긷고 기계를 돌리기 위해 노동에 혹사된 적도 없었다. 자유와 '인간성'만이 결핍되었을 뿐 남부럽지 않던 생활을 하던 고운 여자들이 퓨리오사를 믿고 그 위험한 여정에 동행한 동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퓨리오사를 따라 풀이 우거진 어머니의 땅으로 가면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퓨리오사와 달리, 여자들은 그곳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지만 그 땅에 다다르면 모든 것이 나아질 것이라는 실체 없는 희망을 품고 있다.


워보이들이 죽음도 불사한 채 불나방처럼 전쟁에 목숨을 바치는 행동 또한 궁극적으로는 구원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이 현실이 지옥임을 그들 모두 알고 있다. 모두가 미친 세상, 그들의 교주와도 같은 존재 임모탄을 따르면 내세에서는 천당에 들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실체없는 환상과 희망에 대한 갈급이 워보이들을 내모는 원동력이다. 임모탄의 의미 없는 시선과 알맹이 없는 구원에의 약속 그 의미 없는 껍데기를 위해 눅스는 몇 번이고 목숨을 초개처럼 바치려 했다.


퓨리오사 또한 마찬가지다. 어렸을 적 어머니와 함께 납치되어 시타델에 끌려간 이후, 고향의 푸른 땅에 돌아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악착같이 버텨 신임을 얻고 사령관의 지위에 올랐다. 이 모든 지옥이 오직 고향에 돌아가기만 하면 해결된다는 막연한 구원에의 갈망으로 퓨리오사는 목숨을 건 대탈주극을 벌였다. 때문에 7000일이 넘는 아득한 시간 동안 굳게 믿었던 희망의 실체가, 이미 황폐화된 지 오래라는 것을 깨닫고 그토록 절망하고 좌절했던 것이다. 이후 맥스의 도움으로, 퓨리오사와 일행은 시타델이 새로운 그린 플레이스가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목숨을 걸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맥스는 뼈아픈 경험으로 희망을 가지면 절망한다는 비관적 신념을 가진 인물이다. 초반에는 의지와 상관없이 납치당했기에 살기 위해 퓨리오사와 함께 하지만, 그린 플레이스에 도착한 이후부터는 자신의 의지로 퓨리오사를 돕는다. 다른 등장인물들처럼 실체없는 희망과 구원에 목마른 모습을 대놓고 보여주지는 않지만, 소금사막으로 떠나는 퓨리오사의 일행을 지키지 못한 자신의 가족과 겹쳐보며 그들과 자신을 구원하기로 스스로 결정한다.



3. 그럼에도 아쉬운 스토리의 한계


그럼에도, 이 모든 강렬한 마초적 액션과 시청각 쇼크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스토리에서는 아쉬운 한계점이 몇가지 존재한다.


첫째, 퓨리오사 일행의 시타델 접수는 혁명이 아닌 쿠데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퓨리오사의 시타델 입성과 임모탄 체제의 붕괴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아니다. 진정한 임모탄 독재체제의 붕괴를 보여주려 했다면 <헝거게임 캐칭 파이어>에서처럼 주인공의 행동으로 촉발된 민중의 봉기가 필연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시타델에서 우민으로 그려지고 있는 대중은 이번 체제 붕괴의 주연이 아니었고, 때문에 시타델 접수는 쿠데타에 불과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이 경외하는 대상이 임모탄에서 퓨리오사로 바뀐 것 뿐, 그들은 여전히 굶주리고 절대적인 힘에 복종하는 우민일 뿐이며 따라서 제 2의 임모탄이 등장할 여지가 너무나도 많다.






둘째, 교조화되었던 임모탄의 철옹성이 무너지는 과정이 너무 부실하다.


시타델의 최하층 대중들은 우민으로 그려지는데, 임모탄이 선심쓰듯 배급하는 식량과 물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며 워보이로 대표되는 힘의 압제 앞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수동적 존재다. 워보이 역시 마찬가지로, 비록 중간 계층에서 임모탄의 검이 되어 전투에 앞장서지만 뼛 속 깊이 임모탄의 교조화 사상에 세뇌되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오직 임모탄 님이 그들을 구원할 수 있으며, 임모탄을 위해 분노의 도로에서 영예롭게 죽는다면 내세에는 천당에 들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따라서 세계 2차 대전 일제의 가미카제 자살 특공대처럼 죽음과 고통을 도외시하고 불나방처럼 적을 향해 돌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세뇌는 태어났을 때부터 행해진 것으로, 단지 교주로 대표되는 임모탄 개인의 죽음으로서 쉽게 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워보이들은 임모탄을 필두로 하는 시타델 교조 체제의 한 축을 굳건히 이루고 있었으며, 그 아래에서 온갖 노동을 담당하는 노약한 워보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타델을 이루는 체제는 곧 그들의 알이며, 세계이고 세상의 전부다.


이러한 점에서 눅스가 임모탄을 위해 몸 바칠 수 있었던 세 번의 기회에서 모두 실패하고 퓨리오사의 편이 되는 점은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다. <데미안>에서는 새가 그의 세상의 전부였던 알을 깨고 세계로 나오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통을 수반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연 눅스는 아프락사스의 새가 될 만한 성장통을 겪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세 번의 실패로 낙담하여 삶의 의지를 잃은 눅스를 임모탄의 부인 중 한 명이 위로해주었다고 해서, 바로 그토록 신봉하고 우상시했던 임모탄을 거리낌없이 대적하는 부분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또한 퓨리오사 일행이 시타델로 입성해서 임모탄의 시체를 내던졌을 때, 우민들은 Let them up을 외치며 그들의 입성을 한 목소리로 요구했고, 노약한 워보이들은 무서운 집행자들을 제치고 손수 그들을 위로 끌어올렸다. 퓨리오사 일행이 돌아왔을 때에도 그들은 '사령관이 돌아왔다'며 임모탄 체제 하에서의 명칭으로 퓨리오사를 불렀다. 임모탄의 죽음을 확인하기 바로 직전까지도 그들은 임모탄과 워보이들을 극히 두려워하는 수동적 존재에 불과했다. 그랬던 그들이 단지 임모탄의 죽음을 눈으로 확인했다고 해서 바로 적극성을 띠며 퓨리오사 일행을 반기는 것은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다. 만약 아무도 감히 임모탄의 시체를 건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주춤거릴 때, 우민들 중 한 명이 용감하게 나서서 그의 시체에 손을 대거나 모욕하고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두려움에 주춤대던 나머지가 용기를 얻어 임모탄에게 달려드는 장면이 나왔다면 체제 붕괴의 과정이 약간은 설득력을 지녔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기다렸다는 듯 모두가 우르르 몰려들어 임모탄의 시체를 약탈하고, 위에서 노동을 하며 내려다보던 노약한 워보이들이 퓨리오사 일행을 끌어올리며 체제 붕괴에 급작스레 손을 보태는 것은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영화 맨 마지막 제작진의 메시지에서도 나타난다.


“Where must we go, we who wander this wasteland, in search of our better selves.” 희망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The First History of Man 최초의 인류.


단선적인 스토리 라인을 통해 호쾌하고 강렬한 액션을 메인으로 선보이다가, 결말부에 급작스럽게 신인류의 봉기를 보여주며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던 제작진의 의도는 너무나도 작위적이었다.





셋째, 여성들이 마초적 남성성의 부차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마초이즘이다.  


한 줄 리뷰에서도 썼듯이,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마초적인 영화임을 상영시간 내내 내지른다. 마초적이라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본래 마초라는 것은 기존의 '남성미'라는 관념이 크게 돋보이는 가리키는 말이었고, 근래에 들어 가부장주의와 결합되며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되었으니까.


내가 아쉬웠다고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른 외국 흥행 영화-특히 액션과 스파이물-에서도 당연하게 나타나는, 남성의 부차적인 존재일 뿐인 여성성의 존재다.


본드걸이라는 말이 있다. 유명한 스파이물 007 시리즈에서, 주인공 제임스 본드를 유혹하고 때로는 그를 위험에서 구하면서, 결국에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본드의 트로피와 같은 존재로 표현되는 섹시한 여성들. 이러한 본드걸의 존재는 트랜스포머를 비롯한 흥행 영화에서 늘 주인공을 빛내주는 조연적 역할로 등장해왔고 매드맥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맥스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퓨리오사는 성별로만 따지면 당연히 여자다. 그러나 그녀의 사회적 성, gender 역시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녀의 sex는 여성이지만, 그녀의 gender는 분명 남성이었다. 여자지만 누구보다도 남성적인 퓨리오사는 아름답고 섹시한 임모탄의 부인들과 달리, 머리도 남자처럼 짧게 자르고 옷차림도 군인 그 자체이다. 젊고 강한 워보이들과 대적하면서도 전혀 뒤지지 않고, 마지막에 임모탄을 직접 끝장내기도 했다. 퓨리오사는 여자였지만 누구보다도 마초적이고 남성적인 존재였다.






임모탄의 부인들은 그러한 남성성에 기대고 의존하는 부차적인 존재들이다. 신랄하게 말하자면, 우아하고 섹시한 짐덩어리들이다. 개중에서 무기를 다룰 줄 아는 여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총에 탄환을 끼울 줄도 모르고 마초적이고 피 튀기는 전투 속에서 이렇다 할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임모탄의 시타델 체제 하에서도 그들의 역할은 씨받이와 모유 공장 등 제한적이고 '보호 받아야 하는' 임무에 한정되어 있었을 뿐이다. 심지어 부인들 중 한 명은 차라리 이럴 바에야 임모탄에게 돌아가 임모탄이 제공하는 안락과 보호를 누리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교조화된 체제에서 보호받고 자란 첩의 설정 상 자연스러운 주장이었지만, 여성성은 수동적이고 부차적인 존재로 그려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영화의 세계관 자체가 자원과 물의 절대적 부족, 방사능 피폭 등으로 힘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미친 세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여성성이 등장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은 나 역시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제작진의 마지막 메시지 등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가, 궁극적으로 '인류의 희망과 구원'임을 생각해 볼 때 여성성의 한정된 역할이 아쉬웠다고 말할 여지는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4. 하지만 파괴적인 영상미와 강렬한 시청각 자극만큼은 감히 견줄 수 없다.



이러한 스토리 상의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액션 영화사에 길이 남을 점 하나를 찍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쇼크에 가까울 만큼 파괴적이고 강렬한 영상미와 마초적인 전투, 시청각적 자극은 그 어떤 액션 영화도 쉬이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온갖 인스턴트적 자극에 익숙해진 관객을 120분의 상영시간 동안 눈조차 뗄 수 없게 만드는 매드맥스의 흡입력과 액션의 호쾌함은 단연 최고라 일컬을 만하다.


반드시 영화관에서 보기를 추천한다.










감독 : 크리스토퍼 놀란

극본 : 조나단 놀란

상영시간 : 2시간 50분 (광고 포함 3시간)

평점 : ★★★★★

한 줄 리뷰 :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희망의 메시지가 SF와 어우러진 대서사시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Dylon Thomas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Old age should burn and rave at close of day;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말아요

노인들이여, 저무는 하루에 소리치고 저항하세요.

분노하고 분노하세요, 죽어가는 빛에 대하여.


Though wise men at their end know dark is right,
Because their words had forked no lightning they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그 끝에 다달은 현명한 사람들은 어둠이 옳음을 알지만,
그 말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순순히 어둠으로 들어가지 말아요.


Good men, the last wave by, crying how bright
Their frail deeds might have danced in a green bay,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선한 사람들, 마지막 파도에서, 얼마나 빛났는가를 울부짖으며,

녹색의 만에서 춤을 추었던 것은 그들의 연약한 행동들일지 모릅니다.
분노하고 분노하세요, 죽어가는 빛에 대하여.


Wild men who caught and sang the sun in flight,
And learn, too late, they grieved it on its way,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달아나는 태양을 붙잡고 노래하던 거친 사람들은

너무 늦었음을 깨닫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슬퍼하리니
그 좋은 밤으로 얌전히 가지 마세요.


Grave men, near death, who see with blinding sight
Blind eyes could blaze like meteors and be gay,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암흑 속에서도 죽음과 가까운 용감한 사람들은
멀은 눈도 유성처럼 빛나고 즐거울 수 있을것이니
분노하고 분노하세요, 죽어가는 빛에 대하여.


And you, my father, there on the sad height,
Curse, bless me now with your fierce tears, I pray.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그리고 당신 나의 아버지, 그 슬픔의 높이에서,
당신의 격렬한 눈물로 나를 저주하고, 축복을 빌기를, 나는 기도합니다.
그 좋은 밤으로 순순히 가지 마세요.
분노하고 분노하세요, 죽어가는 빛에 대하여.




영화 전반적으로 등장하는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말아요"라는 이 문구는, Dylon Thomas의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라는 시의 인용구이다. 이 시는 늙은 브랜든 교수부터 주인공 쿠퍼, 쿠퍼의 딸 머피, 쿠퍼의 동료들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혹은 절망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칠 때 주로 읊는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이 계시다면 2번까지만 읽으시고, 영화를 다 보신 후이거나 혹은 스포일러도 감내하겠다는 분들은 전부 다 읽으시면 됩니다.



1. 인트로

이 시대의 천재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인터스텔라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인간에 대한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가 SF와 어우러진 대 서사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2시간 50분, 광고시간을 포함한다면 3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상영된다. 반지의 제왕 마지막편 이후로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관람석에 앉아있던 것은 인터스텔라가 처음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반드시 화장실에 두 번 정도 다녀오고, 영화를 보는 동안 마시는 것은 최대한 자제하라고 권하고 싶다.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혹은 생리현상을 참느라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면 그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 영화는 장면과 대사 하나하나가 눈을 뗄 수 없을만큼 섬세하면서도 경이롭다. 스마트폰과 각종 영상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갖은 단편적 감각과 쾌락에 노출된 관객들을 세 시간 동안 집중시키는 흡입력은 이 영화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이 영화를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하자면, 주인공 쿠퍼가 우주선 인듀어런스(Endurance)호에 올라 지구를 떠나기까지의 전반부, 우주선에 올라 임무를 수행하는 중반부, 위기를 겪고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며칠 전 영화를 보고 왔던 내 언니는 전반부가 상당히 길고 지루하며, 본격적인 부분은 좀 나중에 나온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인터스텔라>를 그저 그런 SF물, 우주탐사물 영화가 아니라,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고 뜨거운 감동을 전달할 수 있었던 대작으로 만든 힘은 바로 이 영화의 프롤로그 격인 전반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거창하게(혹은 애매모호하게) 인류에 대한 사랑과 희생 정신을 무작정 강요하지 않는다. 주인공 쿠퍼를 이끄는 근본적인 원동력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다. 내 자식에게 더 나은 미래를 보여주고 싶다는 소망, 희망이 없는 땅에서 자식에게 희망을 보여주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 더 근본적으로 자식이 굶어서, 산소가 부족해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막고자 하는 아버지로서의 굳은 결심.

늙은 장인 도널드와 15살 아들 톰, 고작 10살밖에 안 된 딸 머피를 두고 기약 없는 위험으로 기꺼이 자신을 던진 쿠퍼를 지탱하는 힘은 바로 이 가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희생정신이다.



왼쪽부터 주인공인 쿠퍼, 딸 머피, 큰 아들 톰.

우연히 인도의 드론을 발견하고 즐거워하던 행복한 한때.



가족의 추억과 사랑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쿠퍼의 집.

주변에 광활한 옥수수 밭이 펼쳐져 있다.

CG가 아니라 실제로 영화촬영을 위해 3년 동안 심어서 기른 밭이라고 한다.




2. 배경 및 간략한 줄거리 소개 (No 스포일러)


식량부족으로 당장 현실을 살아가기에도 힘들어지자, 세계 각 국은 과학과 우주 탐사에 대한 의지를 놓아 버리고 과학자는 학교에서 '지양'하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쿠퍼는 예전 우주선을 조종했던 비행사였으나, 48년 전부터 나타난 중력 이상현상으로 추락을 경험한 후 장인 도널드와 함께 옥수수 농사를 짓고 있다. 아내는 의료기술의 퇴보로 머리 안에 있던 혹을 발견하지 못해 일찍 죽고 말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인터스텔라에서 그리고 있는 미래는 완전한 디스토피아다. 미래의 지구는 더 이상 비가 오지 않아 늘 모래먼지에 뒤덮여 있고, 병충해로 곡물과 식물이 죽어 심각한 식량난에 직면해있다. 밀은 이미 멸종되었다. 그나마 척박한 토양에서 견딜 수 있는 옥수수로 연명하지만 옥수수도 조만간 멸종될 것으로 예상이 된다.

식량의 멸종 뿐 아니라, 대기의 80%를 구성하는 질소를 호흡하며 병충해가 번식해 산소를 먹어치워, 인류는 호흡할 산소의 부족으로 멸종할 위험에 처해있다.


첨단과학기술을 대표하던 각국의 우주탐사국은 폐쇄된 지 오래. 미국의 NASA도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인류에게 폭탄을 투하하라는 정부의 명령을 거부하여 강제 폐쇄되었다고 영화에서 브랜든 교수는 설명한다.

"모두가 나눠먹을 식량이 부족해? 그럼 인구수를 줄여!"

지독한 식량 부족과 함께 정부의 윤리 의식도 사라진 지 오래다. 군대는 해체되었고 정부의 존재는 거의 무의미해졌다.


그러나 폐쇄되었던 NASA는, 더 이상 이 땅에는 희망이 없다는 정부의 판단에 따라 비밀리에 부활되어 인류의 새 터전이 될 행성을 탐색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딸 머피의 방에서 일어나는 기현상 때문에 NASA의 위치를 알게 된 쿠퍼는 그렇게 "우연히" 머피와 함께 NASA에 들어서게 된다.

머피가 늘 Poltergeist(해리포터에서는 피브스로 대표되었던 폴터가이스트. 장난꾸러기 요정? 유령?의 존재라고 생각하면 될 듯.)의 소행이라고 말했던 기현상은, 머피의 서재에 있는 책이 이유 없이 떨어진 것이었다. 엄청난 황사가 몰려왔던 어느날, 머피의 방문이 열려 모래먼지가 잔뜩 들어왔는데 모래먼지가 바닥에 덮이면서 바닥에 2진법으로 어느 장소(NASA)의 위치가 쓰여진 것.


그렇게 쿠퍼는 옛 스승 브랜든 교수와 조우하여 새 행성 탐색 계획에 대해 듣고, 우주선 Endurance호의 조종사가 되어줄 것을 부탁받는다. 이미 나사로 계획으로 11명의 탐사대원을 각 행성으로 보내놨던 NASA는 그들의 신호를 분석하여 인류가 새로 살 만한 행성을 탐사하고자 하는 것. 인류의 멸절을 막기 위해 브랜든 교수는 플랜 A와 플랜 B 두 방법을 구상했다.

플랜A는 그들이 행성을 찾는 동안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이 새 보금자리로 떠날 수 있도록 중력 방정식을 계산하여 다 함께 새 터전으로 떠나는 것.

플랜B는 중력 계산식이 실패할 경우, 수정란 약 1000개를 가지고 새 행성에 정착하여 새로운 인류의 번성을 시작하는 것. 지구의 사람들은 포기해야만 한다.


 

우주선 Endurance 호의 모습.

 

웜홀을 통과하는 Endurance호




브랜든 교수의 젊은 딸 에밀리아 브랜든(앤 해서웨이)과 쿠퍼는 당연히 플랜 A를 약속받고 우주로 떠난다. 두 명의 동료 도일과 로밀리와 함께. 그들이 탐사를 하는 동안, 브랜든 교수는 중력 방정식을 풀어 어떻게든 지구의 인류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굳게 약속했다.


4인의 사람(쿠퍼, 에밀리아 브랜든, 도일, 로밀리)과 두 로봇 중 가족이 있는 사람은 에밀리아와 쿠퍼 뿐이다. 미리 출발한 11명의 탐사대원과 나머지 두 명의 팀원은 홀홀단신. 이는 지구에 남겨진 '애착의 끈'이 없어야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늙은 브랜든 교수의 판단에서였다.


그렇게 인듀어런스호의 탐사팀은 신호가 오고 있는 세 개의 행성을 탐사하기로 결심하고 먼 길을 떠나게 된다.





3. 더 자세한 줄거리와 리뷰 (스포일러 주의!!)



그러나 현실은 공식이나 시뮬레이션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NASA의 연구소에서 그들은 48년 만에 나타난 중력의 이상현상이 그들을 새로운 행성계로 이끌어주는 통로라고 보고 웜홀을 통과해 그 곳에 있는 세 개의 행성을 조사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첫 행성에 도착했을 때, 에밀리아는 뼈아픈 실수를 하고 만다. 그곳에는 모든 생명의 근원인 물이 있었고 먼저 그곳에 도착한 동료 우주선의 파편이 있었으나 생명이 살 수는 없는 환경이었다.  


행성 주변에 있는 블랙홀의 강력한 중력 때문에 거대한 파도가 끊임없이 몰아쳤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공간의 왜곡으로 이 곳에서의 1시간은 지구에서의 7년과 같았다. 이 행성에서 쿠퍼 일행이 3시간을 지체하면 지구에서는 이미 2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빨리 행성을 찾아 가족을 구해야만 하는 쿠퍼는 에밀리아와 언쟁을 벌인다. 머피에게 했던 아빠가 꼭 살아서 너에게 돌아올 거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쿠퍼에게는 시간이 너무나도 간절했다.

그러나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야만 하는 임무 때문에, 결국 에밀리아와 쿠퍼, 도일 셋이 이 행성을 빨리 탐사하고 오기로 한다. 그동안 로밀리는 우주선 본체에 남아 중력 방정식을 더 공부한다.



첫 행성에 착륙했을 때의 모습. 대양을 방불케할만큼 물이 들어차있었다.




에밀리아는 먼저 파견된 탐사대원의 죽음을 확인하고, 우주선 파편에서 기록장치를 분리해오려고 하다 그만 덮쳐오는 파도 때문에 동료대원 도일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만다. 뿐 아니라 지구의 시간으로 23년이 넘는 시간을 소비하고 말았다. 파도 때문에 엔진룸에 물이 들어차서 물을 빼는 동안 약 세 시간 반의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버린 것.

자신이 남겨뒀던 10살의 어린 딸이 벌써 서른 셋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쿠퍼는 마음이 급하기만 하다. 에밀리아 역시 남겨두고 온 늙은 아버지(브랜든 교수)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 자신 때문에 도일이 죽고 시간을 낭비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들이 우주선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로밀리가 동면에 들어있지 않고 23년의 시간을 홀로 보낸 것을 발견하게 된다. 로밀리는 그들이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다며, 흰 수염이 듬성듬성 난 얼굴로 그들을 맞이했다. 23년 동안 로밀리는 중력 방정식의 계산을 마친 상태였다.

이미 시간과 연료가 소모되었기 때문에 남은 두 개의 행성 중 그들은 하나의 행성만을 골라야 하는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쿠퍼는 만 박사(맷 데이먼)의 행성에 가자고 주장하고, 에밀리아는 그보다는 먼 에드먼드의 행성에 가자고 한다. 그러나 쿠퍼는 에밀리아와 에드먼드가 연인이었던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고, 결국 만 박사의 행성에 가기로 결심한다.



(아래부터 스포 주의)


여기서 이번에는 쿠퍼가 뼈아픈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닥터 만은 그들이 생각했던 예전의 그가 아니었던 것. 두번째 행성에 먼저 착륙했지만 그곳은 빙하가 펼쳐진 거대한 얼음의 땅이었고 대기에는 암모니아가 가득해 호흡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인류가 정착하여 일굴 수 있는 '땅' 자체가 없었던 것.

두번째로 도착한 닥터 만의 행성은 동토로 생명체가 생존할 수 없는 불모지였다.



그러나 만은 자신의 실패에 절망하다 점점 생필품이 떨어져가자, 자신 혼자 이 동토에서 죽어갈 공포를 이기지 못해 해서는 안 될 결정을 하고야 만다. 이 행성이 인류가 살 수 있는 곳이라는 거짓 신호를 계속해서 보내며 동면에 든 것이다. 그 거짓말을 믿고 만을 구한 쿠퍼와 에밀리아, 로밀리를 만은 또다시 배신한다.

endurance호를 차지하기 위해 쿠퍼를 속여 죽이려 하고, 로밀리는 폭발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결국 강제로 우주선에 도킹하려다 실패한 끝에 만 박사 자신은 우주선 앞에서 역시 폭발 사고로 즉사하고 우주선 역시 크게 파괴된다.

행성에서 에밀리아가 질식사하기 직전이었던 쿠퍼를 구해, 결국 둘과 유머감각 100%ㅋㅋㅋ인 로봇 '타스'은 모험 끝에 인듀어런스호에 도킹해 우주선으로 다시 진입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미 도일과 로밀리를 잃은 그들은 우주선마저 잃을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닥터 만의 폭발사고 때문에 우주선도 큰 손상을 입은 데다, 연료를 너무 많이 소진해 지구로 돌아갈 수 없게 되고 만 것이다. 결국 무게를 하나라도 더 줄여 에드먼드가 있는 세번째 행성으로 가기로 결정한 쿠퍼는, 에밀리아 혼자만을 우주선에 남겨두고 타스와 함께 블랙홀로 들어가게 된다.

블랙홀로 들어간 자만이 중력의 비밀을 풀 수 있다는 말에, 쿠퍼는 타스와 직접 블랙홀에 들어가 중력을 계산하고자 한다.

새로운 행성계의 주변에 있는 거대한 블랙홀. 쿠퍼는 에밀리아가 에드먼드가 있는 행성으로 떠날 수 있도록, 타스와 함께 블랙홀로 들어가게 된다.





한편(만의 배신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전에) 지구에서는 에밀리아의 아버지 브랜든 교수가 죽기 직전 머피(쿠퍼의 딸)에게 진실을 밝힌다. 사실 중력 방정식은 불완전하며, 지구의 사람들이 새 터전으로 떠날 수 있는 가능성은 0%라는 것. 브랜든 박사는 그것을 알면서도 수정란으로 새로운 인류를 번성시키라며 딸과 쿠퍼를 속여 우주로 보낸 것이었다.

자신의 아버지도 그 사실을 알고 간 게 맞냐며, 우리 가족을 버리고, 우리 가족을 이 땅에서 굶어 죽도록 두고 간 거냐며 절규하는 머피에게 브랜든 박사는 "Though wise men at their end know dark is right, Because their words had forked no lightning they,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라는 시구를 인용하고 눈을 감는다.

이 시구를 머피는 Yes로 오해하고 아버지가 우리 모두를 버렸다며 절규한다. 바로 영상 송신실에 간 머피는 에밀리아에게 영상편지를 통해 브랜든 교수의 사망 소식을 알리며 당신도 자신의 아버지(쿠퍼)도 알고 있었냐며 그들을 비난한다.

딸이었던 에밀리아조차 몰랐던 계획을, 그러나 두 동료 만과 로밀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브랜드 교수는 그들은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인류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고 판단, 진실을 미리 알려 인류의 식민지를 건설하는 비밀 임무를 맡겼던 것이다.

로밀리는 23년 간 중력방정식을 연구한 끝에, 이 방정식으로는 지구의 사람들이 떠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중력방정식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블랙홀에 들어가서 직접 그 안의 중력 데이터를 연구해야만 한다는 것. 결국 최악의 상황에 몰리고 나서야, 쿠퍼는 로봇 타스와 블랙홀로 들어가게 된다.

블랙홀은 시간과 공간이 왜곡되는 곳.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3차원을 넘어서서, 5차원 혹은 그 이상의 차원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3차원의 현실을 제약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은, 블랙홀에서는 그저 또다른 물리적 환경 중 하나일 뿐이다. 쿠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더 이상 해답을 얻지 못하자, 직접 블랙홀로 진입하여 답을 발견하고자 한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좋았던 점은, 이 영화에서는 그 누구도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사람은 사고 방식과 윤리관, 가치관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같은 목표를 두고서도 과정이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인류의 생존'이라는 기치를 두고 브랜든 박사는 자신의 자식까지 속여가면서 소름끼칠만큼 냉정한 선택을 했고, 에밀리아는 임무수행을 위해 기록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다 소중한 동료와 23년 5개월의 시간을 잃었다. 쿠퍼는 에밀리아의 주장이 사랑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하고 '훌륭하고 대단한' 만 박사의 행성에 가기로 결심했다 로밀리마저 잃고 우주선도 고장 직전의 상태가 되고 만다.

그들 모두가 숭고하고 윤리적인 뜻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그들 역시 인간이었기에 판단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렀고 뼈아픈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예외적인 경우라면 만 박사 정도일까? 11명의 탐사대원을 설득해, 본인을 포함하여 망망대해의 우주로 탐사를 나갔고 연구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던 닥터 만. 에밀리아는 쿠퍼가 의견을 물을 때마다 항상 만 박사를 칭송했다. 쿠퍼도 그러한 에밀리아의 만 박사에 대한 평가를 믿고 만 박사의 행성에 가기로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만 박사는 홀로 행성에서 죽어갈 것을 두려워해 세상에서 가장 비열하고 저열한 인간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결국 우주선을 먼저 차지하려는 조급한 마음과 능력 부족으로 그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전형적인 권선징악적 죽음이었지만 영화의 위기부를 구성하는 동시에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리고 영화의 절정&결말부로 가기 위한 연결고리가 되는 부분이다. 만 박사의 배신 때문에 탐사팀이 극한의 상황에 몰리지 않았다면, 쿠퍼는 결코 블랙홀로 들어가지 않았을 테니까.


(강력한 스포 주의!!)


쿠퍼가 같이 가는 줄 알았던 에밀리아가 울부짖으며 홀로 Endurance호에 남아 새 행성으로 떠난 후, 쿠퍼는 블랙홀의 끝에서 5차원의 큐브로 진입하게 된다. 영화 전반부부터 계속해서 나왔던 미스테리한 존재 '그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은 어린 머피의 책을 떨어트려 머피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쿠퍼와 머피에게 NASA의 위치를 2진법으로 알렸으며, 우주선 탐사 초반에 에밀리아와 악수를 하고 중력 이상현상을 일으켜 새로운 행성계로 통하는 웜홀의 존재를 알려온 존재들이다. '그들'은 멸절 위기에 처한 인류를 돕고자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들의 존재는 절정에 달할 때까지 미스터리한 존재로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쿠퍼가 5차원의 큐브로 진입하는 순간부터, 인터스텔라는 절정부에 도달하며 놀란 감독의 천재성은 찬란하게 그 빛을 발한다. 큐브 속의 공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새로운 차원의 곳으로, 쿠퍼는 그곳에서 과거의 머피와 자신을 발견한다. 정확히는 서재가 있는 '머피의 방'을 본다.

뜻밖에 머피를 발견한 쿠퍼는 울부짖으며 머피를 부르는데, 절망 끝에 주먹으로 서재를 쿵쿵치자 그 충격에 서재에서 책이 떨어진다. 영화 전반부에 나왔던 머피의 방의 '기현상'을 일으킨 것은 바로 미래의 쿠퍼(큐브 속에 있는 현재의)였다. 즉, 머피가 포터가이스트의 소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바로 쿠퍼인 것.

5차원의 공간에서 시간과 공간은 그저 하나의 물리 환경이 된 탓에, 큐브 속의 쿠퍼가 과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딸의 책을 떨어트려 STAY라는 모스부호를 전달한 것도, 머피의 방바닥에 NASA의 위치를 2진법으로 전달한 것도, 나아가 우주선이 출발했을 초기에 에밀리아(앤 헤서웨이)와 악수를 했던 것도 5차원 공간 속의 쿠퍼였다.

쿠퍼가 있는 5차원의 큐브 안에는 끝없이 머피의 방과 서재가 펼쳐져 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거대한 시간과 공간이 머피의 방을 통해 연결되어 있었다. 쿠퍼는 그곳에서, 서재 뒤에서 머피의 시간을 보며 타스의 도움을 받아 중력 데이터를 머피에게 전달한다. 전달의 매개체는 그가 머피에게 주고 왔던 손목시계. 언젠가 반드시 머피가 그 시계를 찾으러 올 것을 믿으며, 쿠퍼는 시계의 초침을 통해 모스부호로 중력 데이터를 기록해 놓았다. 그리고 기록이 끝나자, 큐브가 사라지며 쿠퍼는 끝없는 어둠 속에 다시 던져져 눈을 감는다.

 

 
이 영화에서, 그렇다면 웜홀을 만들고 블랙홀 속에 큐브를 설치해 쿠퍼를 이끈 '그들'이 누구인지는 끝까지 명시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쿠퍼의 대사를 통해 그들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쿠퍼와 머피가 성공해서 외계 행성으로 이주한 인류의 오랜 시간동안 발전시킨 문명의 주인들이다. 5차원, 혹은 그 이상의 차원의 문명을 발전시킨 인류의 후예들은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쿠퍼와 지구의 인류를 돕기 위해 웜홀과 큐브를 설치한 것이다.

 



이미 지구는 지독하게 황폐해져 희망을 잃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작물 옥수수마저도 말라죽어가고 있다.

머피는 오빠 톰의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톰이 집착하는 옥수수 밭에 불을 질러버린다.




그 시간, 머피는 중력 방정식을 풀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간 개념이 필요함을 알고 '기현상'이 일어나 자신과 아버지를 NASA로 인도했던 자신의 방에 들르게 된다.

이미 지구는 쿠퍼가 떠나기 전보다 더 악화되어 사람들은 하나 둘 마을을 떠나고 있었다. 머피의 오빠 톰이 낳았던 어린 첫 딸은 병으로 일찍 죽고, 아버지의 이름을 딴 둘째 아들 쿠퍼와 아내 역시 끝없는 황사로 인해 폐병이 심각하게 진행된 상태. 그럼에도 톰은 집을 버리지 못한다. 머피가 들러 나사의 지하로 가서 가족 모두를 치료하자고 권해도, 톰은 절대 집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쿠퍼가 첫번째 행성에서 파도를 만나 23년의 시간을 속절없이 버렸던 기간 동안, 지구에 남겨졌던 장인 도널드는 이미 죽고 톰과 머피 역시 희망을 포기하고 있었다. 영상 메시지를 받을 수는 있어도 보낼 수는 없게 되는 바람에 가족들은 2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쿠퍼와 연락이 단절됐던 것이다. 15살의 어리지만 의젓했던 큰 아들 톰은 어느새 중년의 아버지가 되었고, 딸 제시의 죽음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톰은 이제 아버지를 놓아줄 때가 된 것 같다며 아버지를 잊겠다고 말한다. 머피는 23년 동안 한 번도 메시지를 찍지 않다가(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해서), 자신이 우주로 떠났던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을 때 메시지를 찍어 전송한다.

쿠퍼는 가지 말라며 우는 10살의 어린 딸을 달래며, 아빠는 꼭 돌아올 거라며, 아빠가 돌아왔을 때 어쩌면 우리는 같은 나이일수도 있지 않겠냐 농담을 했었다. 그러나 그 농담은 지독한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쿠퍼의 시간은 불과 몇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지구에 남겨진 딸은 이미 쿠퍼와 같은 나이가 되었다. 쿠퍼의 아들은 쿠퍼가 죽었다고 생각하며 이젠 아버지를 잊겠다고 말한다. 장인은 죽어 아내의 곁에 묻혔다.

쿠퍼는 영상을 보며 흐느낀다. No, no......를 힘없이 중얼거리며, 차마 아빠는 죽지 않았다고, 아빠를 잊지 말아달라고 말하지 못한 채. 이 부분에서 눈물이 나서 너무 힘들었다. 어린 자식들의 생존과 미래를 위해 그들을 떼어두고 우주로 왔는데 쿠퍼가 직면한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현실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애써도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는 지옥. 대체 쿠퍼는 무엇을 위해 가족들을 떼어두고 이 거대한 우주로 온 것일까. 쿠퍼는 지독한 회한과 비통에 몸부림친다.


만약 이 영화가 이러한 쿠퍼의 가족애 대신, 장엄하기 그지없는 '인류애'와 '인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말했다면 인터스텔라는 그저 그런 SF물 중 하나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전반부에서 거의 1시간을 소모하여 보여준 쿠퍼 가족의 끈끈한 사랑과 깊은 책임감 덕분에 인터스텔라는 기존의 SF물과 커다란 차별성을 얻게 된다.

가족애를 통한 관객의 공감.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은 자신과 쿠퍼를 동일시하게 된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물론 관객은 주인공과 동일시의 과정을 거치지만, 스토리를 어떻게 전개하고 표현하느냐에 따라 관객이 한 발짝 떨어져서 냉정하게 관조할 것인지, 일체감을 느끼며 감정변화를 함께 겪을 것인지가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인터스텔라는 바로 '가족애'라는 만국 공통의 키워드를 통해 관객과 쿠퍼의 감정을 일체화시키는 데에 성공한다. 영화를 보면서 쿠퍼가 남겨두고 온 가족은 어느새 내가 남겨두고 온 내 가족, 내 식구가 되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잊기 시작하는 가족을 보며 느끼는 쿠퍼의 절망감은 곧 나의 회한과 고통이 된다. 즉 완전한 공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가 남겨두고 온 딸이 어느새 나와 같은 나이가 되었다면? 내 자식이 지금 이 순간에도 커다란 고통 속에 남겨져있다면? 내가 자식들을 버린 거라고 자식들이 생각하고 있다면?

인터스텔라는 쿠퍼의 경험과 감정을 곧 관객의 경험과 감정으로 치환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러닝타임이 길어도 영화를 관통하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 가족에 대한 사랑의 키워드로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탄탄하게 조이고 흡입력을 부여한다.

그리고 이러한 쿠퍼의 절망과 회한이 영화의 절정을 극대화하는 추진력이 된다. 5차원의 큐브 속에서 쿠퍼가 주먹을 치던 것이 사실은 과거 머피의 방 서재였다는 점을 발견했을 때 관객은 전율을 느끼게 된다. 영화 중반부에서 에밀리아와 로밀리는 시간을 거슬러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시간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조금 더 빠르게 흐리거나 느리게 흐를 뿐, 과거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그러나 블랙홀 속 5차원의 새로운 시공간에서 쿠퍼는 실제로 과거의 시간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 공간속에서 과거는 또 다른 현재의 일면이었다. 쿠퍼는 극한의 상황에 내몰려 반쯤은 포기한 상태로 들어간 블랙홀 속에서 마침내 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한다.



머피가 옥수수 밭에 불을 지르고 오빠 톰을 옥수수 밭으로 가도록 유인한 후, 자신의 방 안에서 그 포터가이스트가 사실은 아빠였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앞서 관객이 느꼈던 절망감과 슬픔은 또 다른 카타르시스로 치환되어 커다란 희망을 선사한다. 5차원 속 쿠퍼가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전 시간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왜 영화 전반부에 그런 인터뷰가 나왔는지, 미스테리한 현상과 존재가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머피는 쿠퍼가 데이터를 남긴 손목시계를 집어들고 오빠 톰을 끌어안으며, 아빠가 우리 모두를 구했다고 환호성을 지른다. 사실 나는 살기등등한 오빠 톰이 무슨 일을 저지를까 영화를 보면서 정말 무서웠다. 그러나 머피의 말을 들으며 어깨를 늘어트리고 말없이 눈을 깜빡이는 톰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아버지를 잊겠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톰이 그 누구보다도 아버지를 놓을 수 없었다는 것을. 언젠가 돌아올 아버지를 기다리면서, 어린 첫째딸의 죽음을 겪고 아내와 아들의 폐병을 보면서도 차마 집을 떠날 수 없었던 톰을, 나는 그제서야 이해하게 됐다.


그렇게 눈을 감았던 쿠퍼가 문득 눈을 뜨자, 쿠퍼는 자신이 병실에 누워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의사들은 그가 124세라며, 그의 딸 머피가 쿠퍼를 만나러 오고 있다고 알려온다. 쿠퍼의 외양은 우주선을 타고 떠났을 때의 중년 모습 그대로지만 그가 동면해있는 동안 지구의 시간은 계속해서 흐른 것이다.

병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쿠퍼와 머피가 성공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구에 있을 동안 황무지였던 야구장은 파릇하게 잔디가 돋아있는 그라운드가 되었고, 땅에서 친 공이 하늘...천장?에 위치한 집의 창문을 깨자 모두가 환호한다. 인셉션의 꿈에서도 나왔던 입체화된 공간을 통해, 이 곳이 지구가 아니라 새로운 행성이라는 것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다.

의료진은 이 곳이 쿠퍼 정류장이라며, 쿠퍼의 딸 머피 쿠퍼의 이름을 따서 지은 곳이라고 알려준다. 그 대사와 앞서 나온 장면을 통해 쿠퍼가 전송한 중력 데이터를 통해 머피가 중력 방정식을 완성하였고, 지구의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이주시켰다는 사실을 함의하는 것.

딸이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 병실에는, 딸 머피가 낳은 자식과 손자 손녀들이 가득하다. 침대에 누워서 곧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는 머피는 그가 두고 떠나왔던 10살의 아이가 아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머피는 아빠가 올 줄 알았다며 미소짓는다.

이 장면의 아이러니한 대비를 통해 관객은 또 다른 감동과 슬픔을 느끼게 되는데, 결국 두 부녀가 성공해서 인류를 구했다는 감동과- 마침내 만나게 되었지만 딸은 이미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슬픔이 바로 그것이다. 머피는 이미 2년 전 수명이 다했지만,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동면으로 남은 수명을 최대한 연장하고자 했고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동면에서 깨어나 죽음 직전에서야 아버지를 만나게 된 것이다.

만나자마자 이별이라는 말이 들어맞는 장면이었다. 쿠퍼는 두고 온 딸과 아들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결국 딸을 만나게 되었지만 둘은 재회를 기뻐할 틈도 없이 바로 이별을 맞이해야만 한다.

중년의 젊은 아버지와,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딸이 재회하는 이 장면에서 나는 또 한번 쏟아지는 눈물을 닦느라 힘들었던 것 같다.

자신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이는 아버지에게, 머피는 그 어느 부모도 자식이 죽는 것을 볼 필요는 없다며, 여기는 내 자식들이 지킬테니 아버지는 가서 에밀리아를 찾으라고 한다. 쿠퍼가 에드먼드가 있는 세번째 행성으로 보냈던 에밀리아 브랜든(앤 헤서웨이).

쿠퍼가 조종사 옷을 입고 복원한 타스와 함께 1인용 우주선에 타는 것을 보여주며, 영화는 맨 마지막으로 새로운 행성에 착륙한 에밀리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연인 에드먼드는 죽었지만 그 곳은 인류의 희망이 될 땅이다. 에밀리아가 우주복 헬맷을 벗고 미소짓는 것을 보여주며 그 행성의 대기와 중력, 기압은 지구와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주변으로 황토색의 땅과 푸르른 녹지를 멀리서 비추며 이 땅이 인류가 살 새로운 터전이 될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에밀리아를 찾아간 쿠퍼가 그녀를 구하며, 둘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될 것 역시 예상하게 된다.

에밀리아가 설치한 베이스 캠프와 새로운 터전의 희망적인 모습을 줌 아웃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영화는 뛰어난 기술적 기교 뿐 아니라, 희망과 사랑을 잃지 말라는 뜨거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작의 반열에 오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관객이 우주선에 같이 타고 있다는 현실감을 주기 위해, 영화에서는 우주선 안과 밖을 보여줄 때 소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우주선 밖의 광활하고 고요한 우주를 보여줄 때에는 모든 소리를 제거하여 영화관에는 숨막힌 정적이 흐른다. 다시 우주선 안을 보여줄 때는 인물들의 대화 뿐 아니라 기계 조작음 등을 넣어 현장감을 극대화한다.

 

또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배경인 옥수수 밭을 캐나다에서3년을 길러 실제로 조성했다고 한다. 두번째 행성인 동토는 아이슬란드에서 실제 촬영했다고. 인터스텔라의 세세한 설정은 쿠퍼 가족의 식사 장면에서도 드러나는데, 쿠퍼가 딸 머피의 방에서 NASA의 위치를 발견했을 때 머피가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 식빵 토스트와 함께 쟁반에 받쳐 들고 올라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 식빵은 옥수수 식빵. 영화 볼 때 한번 자세히 확인해 보시기를. 또 성인이 된 머피가 오빠 톰의 가족과 집에서 식사할 때 식탁에는 온통 옥수수 뿐이다. 옥수수를 제외한 다른 곡물이 모두 멸종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각본을 썼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동생, 조나단 놀란은 이 영화를 위해 4년간 공대 교수 밑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교수는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논문 한 편을 새로 냈다고.

인터스텔라는 복잡한 미래의 과학 기술을 보여주면서도 관객이 괴리감을 느끼지 않도록 어려운 공식이나 설명은 최대한 배제한다. 때문에 영화는 전문적인 느낌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의 집중을 유지하면서 2시간 50분의 기나긴 러닝타임을 지날 수 있다.  

또 배경음은 최대한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심플하게 만들어, 장엄한 우주를 바라보는 관객의 경이로움을 배가시켰다. 
놀란 감독의 전작 <인셉션>을 볼 때에도 나는 배경음악 선정에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인터스텔라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희망이라는 메시지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에 쿠퍼가 아들과 딸의 학교에 찾아가 학부모 면담을 할 때, 선생들은 겨우 15살인 아들 톰의 성적이 낮아 대학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톰의 미래를 점찍는다. 그러나 나중에 톰이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톰은 컬링에서 C를 받았는데도 2등으로 학교를 졸업했다고 알려온다.

늙은 브랜든 교수, 로밀리, 닥터 만, 모두가 중력방정식은 불완전하며 지구의 사람들을 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짓고 포기할 때에도 쿠퍼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그는 모두를 구했다.

나사에서 말없이 우주선을 만들고 용접하는 모든 사람들도, 총 대신 용접기를 들고 묵묵히 뒤에서 노력하며 쿠퍼의 성공을 뒷받침했다.

<인터스텔라>는 인류가 희망과 사랑을 간직하면 이겨내지 못하는 것은 없다는 메시지를 직접 3시간의 상영시간에 걸쳐 보여준다. 쿠퍼의 노력을 통해, 딸 머피와 아들 톰, 나사의 사람들 그 모두의 노력을 통해 결국 인류는 새로운 희망의 땅을 찾았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해가 뜨기 직전이다."
The darkest hour is just before the sun rise.
 
라는 말이 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어둡고 미래의 희망이 없어 보일지라도, 해는 반드시 뜬다. 미래를 믿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사랑과 희망을 항상 가슴 속에 간직하고 나를 믿는다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