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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얼음 - 박남준 -

2015. 3. 17. 10:29 | Posted by 도유정

따뜻한 얼음


박남준

   

 

옷을 껴입듯 한겹 또 한겹

추위가 더할수록 얼음의 두께가 깊어지는 것은

버들치며 송사리 품 안에 숨 쉬는 것들을

따뜻하게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철모르는 돌팔매로부터

겁 많은 물고기들을 두 눈 동그란 것들을

놀라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얼음이 맑고 반짝이는 것은

그 아래 작고 여린 것들이 푸른빛을 잃지 않고

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겨울 모진 것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은

제 몸의 온기란 온기 세상에 다 전하고

스스로 차디찬 알몸의 몸이 되어버린 얼음이 있기 때문이다

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껴안고 눈물지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햇살 아래 녹아버린 얼음의 투명한 눈물자위를

아 몸을 다 바쳐서 피워내는 사랑이라니

그 빛나는 것이라니

   

   

출처 : 박남준 시집적막



사진 출처 : https://ggtour.or.kr/wp-content/uploads/2012/01/pocheon_595.jpg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오는 시, <따뜻한 얼음>.


겨울이 다가오면서 날이 점점 추워지면, 계곡에 살얼음이 하나씩 끼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신기하기도 하고 장난삼아 얼음이 깨지나 안 깨지나 보려고 돌을 던져봤던 기억이 난다.


시인은 그러한 '철 모르는 돌팔매'로부터 겁 많은 물고기들을 보호하기 위해, 얼음이 한 겹 한 겹 옷을 껴입듯 두꺼워진다고 말을 한다.  

그렇게 두꺼워진 얼음이 햇빛에 반짝이는 것은 얼음 아래에 있는 작고 여린 것들이 푸른 빛을 잃지 않고 봄을 기다리기 때문이고, 얼음이 제 몸의 온기란 온기는 모두 그 여린 것들에게 줘버리고 그 스스로는 차디찬 얼음이 되었다고 말한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녹은 얼음의 자취를, 시인은 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품어 눈물지은 자국이라고 표현을 한다.

첫번째 연과 두번째 연에서 계곡가에 낀 얼음을 대상으로 '따뜻한 상상'을 펼쳤다면, 마지막 세번째 연에서 시인의 시선은 우리 삶으로 옮겨오며 '여린 것들을 감싸안아주는 사랑'에 대한 찬사로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나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좋다. 뉴스만 틀면 누가 돈 때문에 누구를 죽였고 뭐를 어떻게 했고 별의별 흉흉한 소식이 전해지지만, 그 중에서도 '아직 우리 사회는 그래도 살 만하구나' 감동하게 만드는 작은 선행이 있다.


삶이 팍팍해질수록 사회에 대한 냉소와 회의가 들불처럼 번지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희망과 사랑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사랑이니까. 내 온기를 다 주어서라도 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품어주는 그 따뜻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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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분간 -나희덕-

2014. 5. 26. 23:28 | Posted by 도유정

오분간

 

나희덕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기다리면서 서성거리면서

아니, 이미 다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기다리는 오분간

아카시아꽃 하얗게 흩날리는

이 그늘 아래서

어느새 나는 머리 희끗한 노파가 되고,

버스가 저 모퉁이를 돌아서

내 앞에 멈추면

여섯살배기가 뛰어내려 안기는 게 아니라

훤칠한 청년 하나 내게로 걸어올 것만 같다.

내가 늙은 만큼 그는 자라서

서로의 삶을 맞바꾼 듯 마주보겠지.

기다림 하나로도 깜박 지나가 버릴 生,

내가 늘 기다렸던 이 자리에

그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을 때쯤

너무 멀리 나가버린 그의 썰물을 향해

떨어지는 꽃잎,

또는 지나치는 버스를 향해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내 기다림을 완성하겠지.

중얼거리는 동안 꽃잎은 한 무더기 또 진다.

아, 저기 버스가 온다.

나는 훌쩍 날아올라 꽃그늘을 벗어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분인 나희덕 시인의 수작이다.

 

사실 시에서는 아카시아 꽃이라고 썼지만, 봄이라서 그런가 나는 읽으면서 벚꽃잎이 봄바람에 흩날려 비처럼 사붓사붓 떨어지는 풍경을 생각했었다.

 

 

 

이렇게 길 양 옆으로 화사하게 만개한 벚꽃이 봄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고, 유치원 간 아이가 타고 올 통학버스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엄마 옆으로 벚꽃잎이 분분히 흩날리는, 아름다운 봄의 한 장면이 마치 사진처럼 내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졌다.

 

버스가 오기까지 그 찰나의 시간을, 여섯살 아이가 스무살 청년으로 훌쩍 자라버리는 시간으로 대치한 발상이 너무나 훌륭하다. 나는 아직 아이를 길러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어머니들은 아이들 자라는 게 정말 금방이라고들 하시더라. 다섯살 여섯살이 엊그제같은데 벌써 교복을 입고 대학에 가고 결혼을 한다고.

 

버스에서 내린 아이가 스무살 훤칠한 청년이 되어 '나'와 마주본다는 시구가 너무 좋았다. '내가 늙은만큼 그는 자라서 서로의 삶을 맞바꾼 듯 마주보겠지.'

나는 내가 자라는 데에만 급급해서 우리 부모님이 나이 드시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 눈 앞에 닥친 학업과 시험, 친구관계에 열중하면서 대학에 가고 졸업을 하는 동안 숱 많던 우리 아빠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듬성듬성 비어있고, 우리 엄마의 머리는 희끝희끝해져 있더라... 내가 크는 만큼 우리 부모님도 어느새 서른, 마흔이 되고 쉰을 넘기시는 것을 곁에 있으면서도 몰랐다.

 

기다림 하나로도 깜빡 지나가 버린 우리 부모님의 생. 그동안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너무 멀리 빠져버린 내 썰물의 빈자리를, 이제 다시 채워야겠다. 내게 준 것보다 더 큰 사랑으로 다시 밀려들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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