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배포전 판매 때 직접 책을 구입해서 읽고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2. 유통기한 뿐 아니라 삼겹살, Sunny Night의 강력한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samk]유통기한 리뷰







나는 왜 samk님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감정의 과잉 없이 덤덤하게 등장인물의 아픔을 들려주는 서술방식 때문일 수도 있겠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등장인물의 감정선 때문일 수도 있겠지.


개인적으로 samk님의 소설은 주인공수의 감정적 치유를 담백한 공감으로 서술한다는 데에 큰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삼겹살, Sunny night, 공포증 시리즈 등 수많은 전작에서도 그랬고 이번에 리뷰하는 작품 <유통기한>에서도 그렇다. 주인공과 수는 각자의 아픔을 가진 캐릭터다. 그러나 각자 그 아픔을 극복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전작 <삼겹살>에서 주인공 김승표는 아버지에게 부정당하고 창녀촌에서 위협당하며, 외롭게 자란 아픔을 독기와 노력으로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린다. 주인수 하정은 어렸을 적 우상처럼 따랐던 반장의 배신, 술을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아버지의 상처를 안고 있는 인물이다. 하정은 승표처럼 상처를 정면으로 맞대면하고 넘어버리기 보다는, 대부분의 우리가 그렇듯이 그저 시간의 흐름 속에 묻어버리는 것을 택한다.


 <Sunny Night>도 비슷하다. 공 최상무는 가족관계, 특히 형,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큰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부모님을 죽음의 길로 인도하고 자신이 미로 안에 갇혀있는 미노타우루스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거실에 그림(빛의 제국)을 걸어놓고 매일 들여다본다. 자신의 아픔을 정면으로 직시하며 자기 혐오를 간직하는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주인수 현우는 특유의 4차원적 성격과 둔한 듯한 캐릭터로 모욕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캐릭터다. 하지만 역시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며 학대당한 어린 시절, 어렵게 자라며 혹사당하던 성장기의 아픔 때문에 '행복'이라는 감정을 박탈당했다. 이 때문에 삶의 이유인 그림이 정체를 보이자, 어린 시절 그를 구해줬던 최상무를 보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보면 <유통기한>은 기존의 작품과는 공의 설정이 약간 다르다고 볼 수도 있다. 유통기한의 채민호는 아픔을 겪을 당시 미성년자였다. 성장기에 느낀 배신의 치명적인 고통, 그 배신 때문에 삶의 이유였던 야구에서 강제로 퇴출당하고 죽음마저 생각했다. 앞서 말했던 전작의 공들이 아픔에 영향을 받지 않거나, 혹은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상처받은 티를 내지 않는 편이라면, 채민호는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로 상처를 크게 입은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공과 수의 관계가 서로가 서로를 '구원'했었고, 결국 둘의 관계를 통해 상처를 치유한다는 핵심 키워드는 유통기한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게 samk님만의 매력이고.


채민호는 이서인에게서 구원을 받은 캐릭터다. 정작 이서인은 그것을 모르지만, 채민호가 죽음을 생각했던 순간 서인이 말했던 10년의 유통기한과 이메일 아이디는 민호를 지탱하는 유일한 희망이 된다. 그리고 미국에서 채민호가 밤의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할 때 느꼈던 절망의 순간마다 채민호는 이서인이 보여줬던 별을 본다. 가장 사랑하던 사람에게서 배신당하고 삶의 이유를 박탈당한 채 미국으로 떠난 민호가 느꼈을 아득한 절망과 고통을, 민호는 담담하게 서술한다. 외삼촌이 자신 때문에 빚을 졌고, 외숙모가 어머니의 유품을 팔아가면서까지 바라지를 해줬지만 탈락한 큐스쿨. 골프채를 사채업자에게 빼앗기기도 했을 만큼, 너무나도 초라하고 비참하며 지옥 같았던 나날들. 민호는 삶의 고통이 닥칠 때마다 서인을 생각하며 구원을 얻는다. 왜 살아야 할까, 하는 절망의 순간에 서인의 이메일 아이디 "le vent se leve, il faut tenter de vivre.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민호에게 삶의 이유를 부여해줬다. 살아가는 데에는 거창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누군가는 반복되는 일상 자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상하게 나 역시 저 문장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나 또한 삶이 힘들 때 내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앞으로도 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하며 아득한 미래에의 절망에 우울해했다. 하지만 그냥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이 좋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책을 읽을 때의 즐거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기쁨 같이 소소한 일상이 내 삶의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싶더라. 채민호가 이서인에게서 구원을 받았듯이, 나도 samk님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쌓여있던 내면의 상처를 치유받는 느낌이 들었다.


주인수 이서인은 삶의 바쁜 일상 속에서 어느새 아픔을 흘리듯 묻어버리게 된 캐릭터이다. 그러나 그 상처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고, 속은 곪아있는 채 아슬아슬하게 시간의 표피 밑에 묻혀있다. 첫사랑이었던 권기태의 배신과 동성애자로 사회에서 받았던 차별과 모욕의 기억이 이서인에게는 아직 화상처럼 남아있다. 가족과의 갈등과 현실적인 돈 문제도 그렇다. 이서인이 어렵게 취직한 건축사무소에서 남들만큼 야근하고 월급을 받지만, 집에 보내는 생활비와 아버지 병원비를 빼면 남는 게 없는 '스쳐가는 월급' 인생이다.


개인적으로 이서인에게서 공감을 많이 느꼈다. 취업 준비생으로서 그가 느낀 막막한 절망, 사회의 부조리한 대우, 성공한 '배신자들'과 민호를 보며 느끼는 열등감, 친구들과 나누는 현실적인 고민은 마치 제 주변을 둘러보는 것 같은 친근감을 준다. 특히 같은 상처를 공유했지만 자신과 다르게 '성공한' 민호를 보며 서인이 느끼는 갖가지 상념은 독자로 하여금 공감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서인의 묻어둔 상처는 민호와 재회하면서부터 다시 밖으로 드러나게 된다. 권기태, 박무영, 한동호, 성수와의 재회가 연이어 이어지며 멈췄던 10년 전의 사건이 다시 이어진다. 잊었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권기태와 박무영을 보는 순간 서인은 동요를 숨길 수 없었다. 시간은 상처를 치유하는 게 아니라, 어떨 때에는 더 상처를 곪게 만들기도 한다. 개인의 인생에서 상처만큼 강렬한 경험은 없다. 사람은 좋은 순간보다는 내가 아팠던 순간을 더 크게 기억하고, 상처를 제 때 치유하지 못하면 그 트라우마가 그 사람의 일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서인도 마찬가지였지만, 서인으로 인해 그 상처를 극복했던 민호에 의해, 이번에는 서인이 상처를 극복하게 된다 .


서인의 성장은 무영을 대하는 서인의 태도에서 드러나게 된다. 나중에 박무영이 자살시도를 하고 병원에 누워있을 때, 서인은 무영을 찾아간다. 가족에게서 절연당하고 내쳐진 무영의 처지가 서인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거기서 서인은 무영이 살아갈 힘을 준다.


원수를 원한과 복수로 대하는 건 쉽다. 그러나 가장 큰 복수는 그 사람을 용서하는 거라고 한다. 서인은 자신과 민호의 삶을 파국으로 밀어넣었던 무영에게 살아갈 힘을 줌으로써 자신의 상처를 완전히 치유한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과거를 뒤돌아보지 않는다. 과거의 상처를 완전히 봉합한 서인에게 남은 것은 민호와의 미래 뿐이다. 서인은 민호와의 관계에서 스스로의 상처를 직면하고, 치유하고, 성장했다.


또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있다. 바로 내 복수는 남이 해준다는 것이었다. 그 문구를 보았을 때, 가슴 속에서 쿵 하고 뭔가가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다. 나도 모르게 또 눈물이 나고, 그 부분을 반복해서 읽게 되더라.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나는 이렇게 그 순간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워하는데 정작 가해자는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화가 나고 우울했다. 보란듯이 성공해서 복수해주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결국 죄는 어떤 방식으로든 되갚음을 하게 되어있는 것 같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다. 까를로스의 아빠 산체스 씨가 젊었을 적 갱단에 소속되었던 '잘못'에 대한 책임을 평생 졌듯이. 이 책임은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모두 적용되는 개념이다. 서인이 허름한 매점에서 민호에게 해줬던 말이 민호를 구원해줬고, 결국 서인은 민호에게서 그 역시 구원을 받는다. 권기태와 박무영은 그들이 뿌렸던 악업을 그대로 돌려받는다.


samk님의 소설을 볼 때마다 늘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다. 착하게 살아야겠다. 나도 누군가에게 구원이 되는 존재이고 싶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함부로 해서는 안 되겠다. 하는 것들이다. 내 부주의가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고, 반면 내 말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 구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마지막으로 긴 리뷰글을 읽어주신 분들과, 항상 소중한 작품을 써주시는 samk님께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다.



 

 


 

·인상깊었던 문장 발췌

 


- “미국의 고속도로는 참 길어요. 어둠 속에 도로를 달리면 끝이 없을 것 같은 기분이 자주 듭니다. 어느 날은 정말로 세상에 나밖에 남지 않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운전을 할 수 없었죠. 그때 밖으로 나가서 해가 뜰 때까지 하늘을 봤습니다.”

 

 


 

- “형 메일 주소가 어렵더라고요. 아이디를 하나씩 치다가 뜻이 궁금해졌죠.”

난 그의 말에 다시 내 글씨를 내려다봤다. 이건 고등학교 때 만든 이메일 아이디이다. 그때 제2외국어가 불어였는데 선생님이 예문으로 시 구절 하나를 알려주셨다. (중략)

“이걸 찾으니까 같이 따라 나오는 다른 문장이 있더라고요.”

알고 있다. 원래는 두 문장인데 길어서 난 하나만 쓴 거니까. 신기하게도 입안에서 그 뒤 문장이 떠올랐다.

“그때 이 뜻을 알고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난 눈을 들었다. 민호의 차분한 눈이 날 보며 덧붙였다.

“그리고 그때 형의 표정이 이 말에서 받은 느낌과 같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죽을 수 없었습니다.”
내 눈에 다시 이메일 주소가 들어왔다. 휘갈겨 쓴 검은 글씨.


le vent se leve
il faut tenter de vivre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하나만 말해 봐.”

 침묵이 흘렀다. 술에 취한 몸으로 바닷물 속에서 오래 버티지 못 할 것 같았다. 남자가 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그대로 앞을 향해 나아가려고 할 때였다. 상대가 느리게 말했다.

   '2시간 40분 후면 해가 뜨니까요.'

 파도 때문에 다시 몸이 휘청거렸다. 커다란 파도가 예고도 없이 그의 얼굴까지 덮쳤다. 손에서 떨어진 휴대폰이 바닷물 속에 잠겼다. 그러나 남자는 큭큭거리며 웃느라 신경 쓰지 못했다. 2시간 40 분. 해는 그렇다고 쳐도 뜬금없이 이 정확한 시간은 뭐란 말인가. (중략)

 한참을 그렇게 누워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2시간 40분 정도. 눈을 떴는데 떠오른 해가 보였다. 이상하게도 목이 멨다. 수천 번은 봤을 아침 해다. 그러나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그걸 보며 목 놓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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