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하기 힘든, 아니 난 나약하기 때문에 그냥 내 기준에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단 도망치고 보는 경향이 있다.
정말로 우울하거나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외로우면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조차 너무 힘들어서 주로 잠으로 도피하는 것 같다.
자고 일어나면 멍하고 머리가 무거울지언정 격하게 풍랑이 일던 감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져 있으니까
마치 내가 무의식의 세계로 도피해있는 동안, 온갖 복잡하고 소모적인 감정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폭풍처럼 머릿속을 휩쓸고 지나간 느낌이다.
자고 일어나면 감정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문제를 관조할 수 있게 되는데 그럼에도 문제의 이면을 정면으로 마주보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린다.
내가 가장 자주 쓰는 현실도피법인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할 수 있는 게임을 하거나...... 하지만 마치 이런 느낌이다, 마음 속 깊은 곳에 박혀있는 기둥에 끈을 매달아 내 몸에 연결해놓고 안간힘을 써서 도망치는 것처럼, 어느 순간에는 줄이 팽팽해져 아, 내가 사실은 자유롭지 않았구나, 모른 척 도망칠 수 없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럼 그 때부터 머릿속의 상담센터가 문을 연다. 상담센터에 앉아있는 내가 어느 때는 취조 중인 수사관처럼 캐묻고 따지고 꾸짖다가 또 어느 때는 그냥 감싸안아주고....... 머릿 속에서 잘잘못을 따지다가 모르겠거나 헷갈리면 주변에 물어본다. 그럼 또 며칠을 생각하면서 따지다가 결판이 남. 이건 내가 잘못했고 이건 내 잘못이 아니고. 그러고 나면 좀 정리가 되는 느낌이다. 그래도 답이 안나오는 문제도 많지만......
점점 나이가 들수록 주변에 말을 하기가 힘들어진다. 다 자신만의 무게를 견뎌내며 사는데 내가 징징대면서 그들의 문제도 아닌 걸로 그 무게에 짐을 더하기 싫어서. 다들 이렇게 사는데 나 혼자 유난떨고 주변에 폐끼치는 것 같아서.
혹은 거절이 두려워서.
6년, 아니 8년 동안 나는 점점 겁쟁이가 되어버린 것 같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가 약간의 낌새만 보이면 황급히 물러나서 문을 닫아버리는, 그리고는 부산하게 제 안의 상처를 핥으며 한겹의 벽을 더 둘러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겹겹이 벽을 세우다보니 이제는 결정의 순간에도 우물쭈물하고 아직 잃어버리지도 않은 것을 미리 두려워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이건 이래서 안 될 거야, 저건 저래서 안 돼......
아직도 그 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그 주변만 빙빙 맴돈 느낌이다. 몇 년 동안은 생각만 해도 눈물이 쏟아지고 그 일을 말하는 것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웠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은 큰 감정의 동요 없이 그 일을 말할 수 있고 생각도 할 수 있어서 다 나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던 것 같다. 돌이킬 수 없는 낙인처럼 내 내면에 깊숙히 남은 흔적이 날 완전히 뒤바꿔놓은 것을 보면. 무력하고, 겁쟁이에, 나약하고,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생각들이 결정합니다. 라는 말이 있다. 내 인생은 내 무수히 많은 생각과 후회와 고통, 외로움...... 도피. 그런 것들로 조금씩 방향이 틀어져 버린 것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하는 생각이 간혹 들 때마다 나는 내 인생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겁쟁이가 되긴 했지만 더 나아진 면도 분명 존재했기에. 나는 좀 더 배려할 줄 알고 좀 더 다정하며 남을 조심스럽게 신경쓸 줄 아는 인간이 되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외로워지는 기분이다. 내가 남을 배려하고 사랑해주는 만큼 나도 사랑받고 싶었던 것 같다.
패배의식에 젖어 늘 똑같은 일상이, 나를 가둔 좁고 작은 상자가 이젠 익숙해져 버린 느낌이다. 이제는 실패, 탈락, 같은 단어가 익숙하고 합격, 칭찬 같은 것을 간혹 들을 때면 놀라게 된다.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렵고 익숙한 곳, 익숙한 사람만 찾게 된다. 가끔 이런 것을 깨달을 때면 고통스럽다. 평생 이렇게 늘 하던 것만 하고 먹던 것만 먹고 보던 것만 보며 우물 안에 갇혀 살까봐 두렵다. 하지만 우물을 벗어날 의지가, 힘이, 열정이 아직 내게 남아있는가. 알 수 없다.
열정이 고사한 느낌, 뭔가를 하고 싶다는 능동적인 의지와 희망, 기대...... 이런 것들이 점차 말라 없어져버리는 느낌이 든다. 난 고작 20대인데.
미래는 알 수 없기에 가치가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아직 두렵기만 하다. 나름 뛴답시고 서둘렀던 길이 사실은 그저 언저리를 뱅뱅돌았던 것일까봐......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왜 나는 변화하고 노력하지 않는가. 왜 나는 주변에 실망만 안겨주는 실패자가 되었을까. 언제부터 잘못된 걸까. 숨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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