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on, The Professional

2015. 8. 22. 17:51 | Posted by 도유정






Leon, The Professional





감독 : 뤽 베송

배우 : 쟝 르노, 나탈리 포트만, 게리 올드만

상영시간 : 133분

별점 : ★★★★★


한줄 평가 : 숙녀같은 아이 마틸다, 아이같은 킬러 레옹, 킬러같은 경찰 스텐스의 3중주

(출처 : 네이버 영화 '레옹'의 리뷰/평가. 아그라마님.)




이보다 더 적절하게 레옹을 표현하는 한줄 평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 아그라마님의 표현을 빌린다.

 

 

 

 


 









1. 그 남자의 삶은 단조롭다




19살 때 프랑스에서 첫 살인을 하고, 미국으로 건너와 킬러로 일하고 있는 남자, 레옹.


일을 할 때는 누구보다 차갑고, 비정하며 단호하다. 초반 마피아를 손봐 달라는 의뢰를 받고 그의 부하들을 하나 둘씩 깔끔한 솜씨로 처리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프로(the professional)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기관총을 들고 있는 마피아의 부하들을 모두 처리하고, 어둠 속에서 빛이 번쩍이는 나이프를 든 손이 스윽 등장하는 장면은 잔혹한 킬러 레옹의 모습을 압도적으로 보여주는 씬이었다.




그러나 킬러가 아닌 인간으로서 레옹의 삶은 고독하고, 우울하며, 단조롭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고통을 감내하는 듯한 표정으로 샤워를 하고 우유 한 잔을 마신다.


그의 식탁에는 늘 우유 두 팩이 상비되어 있다.


이 우유 역시 레옹의 자라지 못한 내면을 상징하는 장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토니가 술을 마실 때에도 레옹은 늘 우유를 주문하고, 우유를 제외한 커피나 주류는 마시지 않는다.




그의 유일한 취미 생활은 오래된 흑백 뮤지컬 영화 감상. 우울한 듯 고요하고 단조로운 삶을 이어나가는 레옹도, 영화를 볼 때만은 아이처럼 천진하게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인다.


비록 영화가 지루해 관객 수가 극히 적고, 그나마 있는 사람들도 졸고 있지만 레옹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난 것을 보는 사람처럼 순수하게 즐거워한다.



레옹의 유일한 친구는 그가 우유 두 팩과 함께 늘 들고 다니는 화분.


아침이면 늘 창을 열고 화분을 햇볕에 내어 두었다가, 밤이 되면 다시 집 안으로 들여놓으며 애지중지한다.








레옹은 화분을 best freind 라고 표현하는데, 화분은 레옹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다.


뿌리가 없는 삶.


레옹은 19살 때 첫 살인을 저지른 이후, 늘 떠돌아 다닐 준비를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나가고 있다. 그의 인생에는 친구도, 사랑도, 가족도 없다. 총과 우유 두 팩, 화분을 들고 그는 정처없이 세상을 떠돈다.


레옹에게는, 그를 받아주고 지탱해 줄 땅이 없기 때문이다.



 

 

마틸다는 그런 레옹을 보며 정말 사랑한다면 공원에 심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린 소녀의 당돌한 말에 레옹은 당황하며, 어물어물 수긍하고 만다.





2. 단조로운 킬러의 삶에 찾아온 한 소녀




레옹이 살고 있는 싸구려 아파트. 길고 긴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언제나 한 소녀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아빠에게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소녀의 눈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다. 어쩌다 생긴 상처냐고 묻는 레옹에게, 소녀는 자전거를 타다 넘어졌다고 말하지만 레옹은 학대와 폭력의 흔적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레옹은 모른 척한다. 소녀는 레옹이 책임져야 할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코피를 흘리는 소녀를 지나치지 못하고 손수건을 건네는 레옹에게, 소녀는 물었다.





삶이 언제나 가혹한가요, 아니면 어린 아이에게만 그런가요?


레옹은 대답했다. 언제나 그렇지.


어린 아이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소녀는 조숙하다. 소녀의 고된 삶이 소녀가 아이일 수 없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창녀 같은 새엄마, 폭력을 휘두르는 마약상 아빠, 못된 이복언니. 소녀의 유일한 가족은 자신을 늘 위로해주는 4살배기 어린 남동생 뿐이다.

 

12살 난 소녀는 학교도 가지 않고, 늘 아파트 계단 복도에 앉아 담배를 태운다. 흘러가는 담배 연기 속에 자신의 동심과, 꿈과, 고된 삶을 함께 태우고 있을 소녀의 얼굴은 쓸쓸한 노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자신에게 친절을 베푸는 레옹에게 삶에 대해 물을 때는 새파랗게 날이 서 있기도 하다.

 

소녀의 얼굴 그 어디에도, 어린아이의 표정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기에는 그녀에게 삶은 너무 가혹하고 고된 탓이다.



다음날, 마틸다가 식료품을 사러 나간 사이 약을 취급하는 부패 경찰 스탠스필드 일당이 마틸다의 집을 습격한다. 공급받는 약의 순도가 점점 떨어진다는 이유로, 중간 마약상인 마틸다의 아버지와 그 일가족을 본보기 삼듯 참살한 것이다.

 

 

 

 

뽕맞은 게리옹의 연기.

 

알약 형태로 되어있는 마약을 오독오독 씹어 삼키고 나서 몸을 풀며 마치 오르가즘을 맞는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는데, 눈이 몽롱하게 풀리며 나른하게 변하는 연기가 일품이다. 진짜 뽕 맞은 줄 알았다.


게리 올드만을 처음 본 것은 어렸을 적 Air Force One (에어포스 원)의 악역 연기에서였는데, 레옹의 스탠스필드에 비하면 에어포스원의 발레라는 귀여운 수준이구나 싶었다. 고상하게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거짓말의 냄새를 맡는 등장부터 범상치 않다 싶더니, 완전 싸이코가 따로 없었다.


음악을 지휘하듯, 왈츠를 추듯 경쾌한 손놀림과 걸음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와 망설임 없이 사람을 쏴죽이는데 나는 처음에 스탠스필드가 무슨 마피아 일당인 줄 알았다.


그런데 경찰이었어. 헐.

 








 



레옹에게 사다줄 우유 두 팩을 사들고 들어오던 마틸다는, 기민하게 분위기를 감지하고 자신의 집이 아닌 것처럼 집을 지나쳐 레옹의 집 초인종을 누른다. 그녀의 집 앞에서 보초를 서던 남자가 수상쩍게 쳐다보자, 눈물을 흘리며 제발 문을 열어달라고 사정하고, 레옹은 결국 그녀를 받아들여 마틸다를 구해준다.

 

 

 

 

마틸다는 자신이 유일한 가족으로 여겼던 남동생을 죽인 스탠스필드 일당에게 복수하기 위해, 레옹에게 계약을 제의한다.


영어를 쓰고 읽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레옹을 위해 집안일도 하고 영어도 가르쳐줄테니, 자신에게 cleaner(킬러)로서의 이론을 가르쳐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소녀의 당돌한 요구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막무가내식 행동, 간간히 엿보이는 여린 모습에 레옹은 결국 마틸다를 받아들이고 만다.

 

 

 


어른의 외면을 한 아이같은 킬러 레옹, 아이의 외면을 한 어른 같은 소녀 마틸다.


그렇게 두 사람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3. 무채색의 삶을 색색깔로 물들이는 나비 같은 소녀, 그리고 레옹 



당돌한 소녀 마틸다는 단조롭고 고요했던 킬러의 삶에 저벅저벅 걸어들어와, 남자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늘 일만 하면 지루하니 게임을 해보자며, 기상천외한 옷을 입고 나타나 누군지 맞춰보라고 하며 레옹의 얼을 빼놓거나.


 




 

 

레옹과 사랑에 빠졌다며 느닷없이 사랑을 고백해와 레옹이 우유를 뿜게 만들기도 한다.

 




레옹이 How do you know it's love if you've never been in love before? (한 번도 사랑에 빠져본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이게 사랑인 걸 아니?) 라고 묻자 마틸다는 'Cause I feel it. 이라고 대답한다. 레옹의 Where? 라는 물음에 마틸다는 In my stomach. It's all warm. I always had a knot there, and now it's gone. 라고 대답하며 자신만의 사랑의 정의를 거침없이 표현한다.






무채색이었던 외로운 킬러의 삶은 마틸다가 채워넣은 색색깔의 기묘한 느낌들로 물들어가기 시작한다. 그가 돌아오면 그를 맞이해주는 사람이 있고, 그의 화분을 돌봐주고, 때로는 사고를 쳐서 다른 숙소로 이동하게 하기도 하지만, 레옹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과 경험들로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한다.


그 변화가 레옹에게 좋은 것일까.


그의 일을 중개해주는 브로커이자 그가 받아야할 돈을 자칭 대신 관리해주는 토니는, 변화는 좋은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변화는 그를 약하게 만들고, 더 이상 최고가 아니게 될 거라고.

 

일을 할 때 외에는 어린아이처럼 어수룩하고 사람과의 교류가 익숙하지 않은 레옹은, 답을 알 수 없다.
 

 

늘 혼자였고 혼자인 게 익숙했던 레옹은 낯선 변화에 휩쓸려 가다가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자 거세게 저항하기도 한다.

 



 

마틸다를 구해준 날 밤 그녀를 죽이려고도 해봤고,  





소녀의 고백을 "I'm late for work. I hate being late for work." 라는 말로 황급히 피하고는 문을 나선 뒤 벽에 머리를 기대며 고뇌하기도 한다.


레옹에게 2만불을 건네며 자신의 남동생을 죽인 스탠스필드 일당에게 복수해달라는 소녀의 요청을 거절하며 잊어버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마틸다는 자신이 이기면 레옹이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고, 진다면 레옹은 평소처럼 혼자서 쇼핑을 할 수 있게 될 거라며(자신이 죽으면 레옹이 다시 혼자가 될 수 있다는 뜻) 두번째 게임- 러시안 룰렛을 제안한다. 레옹은 총알이 걸리는 소리를 들었다며 네가 질 거라고 말하지만, 당돌한 소녀 마틸다는 사랑이 아니면 죽음을 원한다며 레옹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방아쇠를 당긴다.

 

 

 

 

 


결국 레옹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마틸다의 팔을 쳐내 총알을 빗겨나가게 만든다.

 

마틸다는 자신이 이겼음을 선언하고, 레옹은 결국 마틸다를 완전히 받아들이게 된다.

 

 

 

 

 

 

마틸다를 데리고 토니에게 가 정식으로 소녀를 소개하고, 자신이 일하는 곳에 데려가 기술을 가르친다. 어떻게 문을 따고 확인 사살로는 어느 부위를 쏘아야 하는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 소녀는 레옹을 따라다니며 모든 것을 배우고 흡수한다.

 

토니에게로 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마틸다에게 그가 벌었던 돈을 전부 주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4. 아이의 모습을 한 어른 마틸다, 어른의 모습을 한 아이 레옹

 

 

일할 때에는 누구보다도 냉혹하고 자비 없는 킬러지만, 레옹은 첫 살인을 저질렀던 19살 이후로 자라지 못한 어리숙한 아이 같은 남자다.


누가 봐도 12살에 불과한 마틸다의 18살이라는 거짓말을 혼자서만 믿는 면이나, 모두가 지루해하는 인기없는 흑백 뮤지컬 영화를 입 벌리고 보는 모습, 브로커 토니에게 그가 벌어 온 돈에 대해 변변히 말하지도 못하는 어수룩한 모습, 일할 때 비니를 쓰는 이유가 감기에 걸릴까봐라고 말하는 장면, 마틸다의 거침없는 고백과 언행에 어쩔줄을 몰라하는 모습은 레옹의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 같은 내면을 보여준다.

 


 

 





영화 중반에 보면 레옹이 너와 함께 다니며 감이 떨어졌다고 혼자 일을 나간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 레옹은 마틸다에게 "You need some time to grow up a little."라고 말한다. 마틸다가 I finished growing up, Leon. I just get older. (난 이미 다 자랐어요, 레옹. 그저 나이만 먹으면 돼요.)하고 대답하자 레옹은 "For me it's the opposite. I'm old enough. I need time to grow up." (나와는 반대로구나. 나는 나이 먹을만큼 먹었지만 아직 더 자라야 하는데.) 라고 말한다.

 

어린 아이의 외면을 한 어른 같은 마틸다와, 어른의 외면을 하고 있지만 속은 미성숙한 어린아이인 레옹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런 미성숙한 레옹의 모습은 그의 상처로부터 기인했다.

 

돈을 건네며 복수를 의뢰하는 마틸다에게 레옹이 "Revenge is not good once you're done. Believe. It's better to forget."(복수는 이루고 나면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지 않아. 잊는 게 나아.)"라고 말하며, 한 번 사람을 죽이고 나면 그 때부터 인생이 바뀌고 만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레옹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홀로 스탠스필드를 죽이러 경찰청 건물에 들어갔다가 도리어 잡힌 마틸다를 레옹이 구해낸 날 밤, 마틸다는 레옹이 사준 옷을 입고 레옹과 첫 경험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것을 거절하며 이유를 묻는 마틸다에게, 레옹은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며 눈물을 흘린다.


프랑스에서 나고 자랐던 레옹이 19살이었을 때, 레옹은 사랑하던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매우 좋은 집안의 딸이었는데 레옹이 그녀와 만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던 여자의 아버지가 어느날 딸의 머리에 총을 쏴 딸을 죽이고 말았다. 그러나 감옥에 들어갔던 남자는 단 이틀 후에 풀려나왔다. 사고였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레옹은 남자가 풀려난 날 밤, 총을 들고 가 남자를 똑같이 '사고로' 죽인 후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 날 이후, 레옹은 단 한 번도 이 도시를 떠나지 않고 킬러로서 토니를 위해 일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우유 한 잔을 마시며 담담히 그의 과거를 고백하는 레옹의 눈물은, 그의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회한, 지울 수 없는 상처, 그 이후로 자라지 못한 내면의 여린 모습,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그의 아픔이 모두 녹아든 것이었다.


이에 마틸다는 대신 침대에서 함께 자자고 말한다. 마틸다를 침대에서 재우고 늘 불편하게 의자에 몸을 구겨넣고 자는 모습이 지긋지긋하다며, 어색해하는 레옹을 억지로 눕히고 그의 신발을 벗겨 이불을 덮어준다.




 


 

그 날 밤, 레옹은 19살의 밤 이후 처음으로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항상 한 쪽 눈을 뜨고 선 잠을 자던 레옹이 코까지 골며 숙면을 취했던 것이다. 레옹은 이런 자신의 변화가 어색하지만 전처럼 소녀를 밀어내지 않는다.

 

마틸다가 다가서는 만큼 뒤로 물러서거나, 소녀를 밀어냈던 레옹이 처음으로 그녀를 온전히 받아들였던 날 밤. 얼어붙은 채 그 어떤 희망의 씨앗도 틔우지 못했던 레옹의 동토(冬土)에 봄이 찾아들고 있었다.


 

 

 

5. 새 희망의 지평선에 불어온 바람, 그리고 약속

 

 

 

 

그러나 그들의 행복은 단 하루도 가지 못했다.

 

자신과 연관된 마약상들이 모두 죽음을 당하고, 자신의 사무실에 그 킬러가 직접 찾아와 부하들을 죽이고 마틸다를 빼간 사실에 분노한 스탠스필드가 직접 토니를 찾아가 킬러의 소재지를 물은 것이다.

 


 

스탠스필드의 협박에 토니는 레옹의 거처를 말해버리고, 그 날 아침 우유를 사러 나갔던 마틸다는 숙소를 포위한 SWAT에게 붙잡히고 만다.


 


노크 암호가 있냐는 말에 마틸다는 '응급상황'을 뜻하는 노크를 가르쳐주고, 그녀의 말을 믿은 특공대가 노크후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간 순간 방에 들어섰던 1분대가 준비한 레옹에 의해 모두 전멸하고 만다.


소식을 들은 스탠스필드는 200명에 달하는 SWAT 전 대원을 투입하라고 명령한다.





게리 올드만의 연기가 압권. 플짤만 봐도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게리 올드만은 완벽하게 그 캐릭터에 녹아들어서 머리카락 한 올부터 발 끝까지 모두 그 사람이 되어 연기하는 느낌이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부패 경찰 스탠스필드의 광기 어린 표정과 행동이 영화를 빛냈다.

 

 

전 경찰 병력의 화력에 레옹은 배기구를 부숴 좁은 통로로 마틸다를 탈출시키려 한다.


혼자서는 가지 않으려는 마틸다에게, 레옹은 그의 얼어붙은 땅 위에 작게 솟아난 희망의 새싹을 고백하며 소녀를 보낸다.


I know I've got a lot of money with Tony. We will take it and leave together, just the two of us. You've given me a taste of life. I wanna be happy, sleep in a bed, have roots. You'll never be alone again. 토니에게 맡겨둔 돈이 아주 많아. 그걸 가지고 함께 떠나자, 단 둘이서 말이야. 네 덕분에 삶이 뭔지도 알게 됐어.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침대에서 자고, 뿌리도 내리고. 넌 다시는 혼자가 되지 않을 거야.











끈질기게 사랑을 고백할 때마다 소녀의 고백을 부인하고 회피했던 레옹은, 최후의 순간에서야 마틸다에 대한 사랑을 인정하고 고백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삶에 대한 진정한 희망을 품었다.


그렇게 소녀를 떠나보내고, 레옹은 절규하듯 울부짖는다.

 

화면이 바뀌고, 레옹과 마틸다를 찾으러 들어온 SWAT은 그들의 복장을 하고 있는 한 생존자를 발견하고 그를 아래층으로 구출해 데려간다.

 

그 대원의 정체는 레옹. 특수부대원의 옷을 빼앗아 입고 대원인 척 가장해 건물을 빠져나가려는 계획이었다.  

 

 

 

그의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수많은 병력이 투입된 탓에 낯선 그의 얼굴을 보고서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래층에서 지시를 내리던 스탠스필드가 레옹의 얼굴을 목격하고 만다.

 

 


레옹임을 확신하고 희열에 찬 표정으로 바뀌는 스탠스필드의 얼굴. 섬뜩한 광기가 묻어나온다.

 








단 몇 발자국만 더 걸어가면 마틸다와 약속한 희망의 땅이 있다. 늘 고독하고 떠돌아다니던 삶을 청산하고, 마틸다와 함께 침대에서 잠들고 뿌리를 내리는, 인간다운 삶이 그의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언제나와 같은 어리숙한 표정이지만, 고통과 피로로 몽롱해진 눈에는 새 삶에 대한 희망이 어려있다. 어둡고 고요한 건물 안, 들리는 것은 그 자신의 거친 숨소리 뿐. 건물의 어둠 속에 잠겨 있다 점차 빛을 향해 나아가는 레옹의 모습은 길고 긴 과거의 어둠 속을 지나 마틸다와 함께 하는 미래로 걸어가는 그의 인생과도 닮아있다.






 

 

그러나 단 몇 걸음을 남겨두고, 레옹의 시야는 무너지고 만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빛이 있는데, 무릎이 꺾인다.

 

 

 


 

 

 

총에 맞고 쓰러진 레옹의 위로 스탠스필드가 서자, 레옹은 그의 이름을 부른다. 특유의, 어눌한 영어 발음으로.

 

 

 

 


끝까지 주먹을 펴지 않던 레옹은, 피묻은 손으로 더듬거리며 스탠스필드의 손 안에 무언가를 쥐어 준다.


마틸다로부터, 라는 말을 남기고 눈도 감지 못한 채 죽어버린 남자를 잠시 보다 스탠스필드는 손 안의 내용물을 확인한다.


 

 


쥐어져 있던 것은 폭탄의 핀.


남자는 그가 살아 걸어나가지 못할 순간까지 대비해, 온 몸에 폭탄을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폭발.


남자의 희망과, 고통, 이루지 못했던 마틸다의 복수를 삼킨 거대한 불길이었다.

 

 


 

한편, 마틸다는 무사히 통로를 빠져나와 화분과 토끼 인형을 들고 건물을 빠져나간다.

 


 

검댕도 채 지우지 못한 눈물 젖은 얼굴로, 레옹이 만나자고 한 토니의 가게에서 레옹을 기다리던 마틸다.

 

소녀에게 전해진 것은 폭발사고의 비보였다.

 

레옹의 죽음을 암시하며, 토니는 레옹의 유언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그가 번 전 재산을 마틸다에게 주라는 말과 달리 토니는 레옹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은행 대신 돈을 맡아준다며 똑같은 수작을 부린다.

 

어리숙한 레옹이 영어 문서를 작성할 줄 모르며, 관공서의 일에 익숙치 않다는 점을 이용해 그의 돈을 맡아 관리하던 토니는 마틸다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의 돈을 마틸다에게 주지 않는다.

 

 

 

 

 

 

레옹처럼 일을 할 수 있으니 일을 소개시켜 달라는 마틸다에게, 토니는 이 미친 짓거리들은 모두 잊으라며 학교로 돌아가라며 소리친다. 마치 거지에게 적선하듯 100달러만을 건네며 다음달까지 얼굴을 들이밀지 말라는 토니를 바라보다, 마틸다는 아무말 없이 가게를 나온다.

 

번화한 거리의 밤, 소녀가 갈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고아가 된 소녀를 받아주고 지켜줬던 남자, 함께 떠나 뿌리를 내리자고 약속했던 남자가 세상에 없기에.

 

 

 

 

 

 

케이블카를 타고 도심을 지나, 건너편 교외 공원지역에 위치한 학교로 돌아간 마틸다.

 

솔직하게 말해달라는 선생님에게 그간의 사정을 말한 마틸다는, 남자에게 말했던 것처럼 학교가 그녀를 받아주지 않으면 오늘밤 자신은 죽는다고 말한다.

 

소녀가 했던 거짓말보다 더 거짓말 같았던 남자와의 생활. 바로 하루 전 미래를 약속했던 남자를 잃고 모든 뿌리를 잃은 소녀와는 달리, 세상은 여전히 평온하고 바쁘기만 하다.

 

마틸다는 남자가 부탁한 화분을 들고 나와, 양지바른 곳에 화분을 심는다. 소녀를 만나기 전까지 야트막한 도기 속에 갇혀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화분처럼, 세상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삭막한 도시를 떠돌았던 레옹.

 


 

 





정말 사랑한다면, 공원에 심어 뿌리를 내리게 해야 한다는 본인의 말을 지키듯 소녀는 정성스레 땅을 파 화분의 식물을 심어준다.


"I think we'll be okay here."라는 말과 함께.


마치 이 생에서는 이어지지 못한 남자의 뿌리내린 삶을 대신하듯.


죽어서야 함께 하게 된 남자는, 소녀의 가슴 속에 뿌리내려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다.





 

6. 감상

 

 

 

레옹을 감상하기 전에, sting의 shape of my heart를 먼저 접했었다. 정성하의 유튜브 동영상을 구독하여 보던 중 정성하가 올린 shape of my heart 의 핑거스타일 편곡 연주 영상을 보고 노래에 빠져들었다. 특유의 쓸쓸한 목소리, 우수어린 멜로디, 가사. 노래를 좋아하다 보니 이 곡이 그 유명한 영화 레옹의 엔딩곡이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레옹에 관심이 갔다.


사실 너무나도 유명한 영화라 언젠가는 봐야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최근 무한도전 가요제 편에서 박명수와 아이유가 레옹과 마틸다 컨셉을 잡았다는 것을 보고 시간이 난 김에 마음 먹고 보게 되었다.


니키타, 테이큰, 루시 같은 유명한 킬러/액션 영화의 제작 감독에 참여한 뤽 베송의 대표작답게, 영화는 오래된 제작연도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영상과 미쟝센을 선보인다.


주인공 레옹은 영화가 시작된 지 7분여가 지나서야 그 얼굴을 완전히 드러내는데, 그 짧지 않은 시간을 전혀 지루하다고 느낄 틈도 없이 잔혹하고 깔끔한 살인이 줄을 이어 등장한다. 지루하게 그저 총을 쏴대고 주인공은 모든 총알을 빗겨나가는 유치한 액션 영화처럼이 아니라, 갈고리로 채어 계단 아래로 집어 던지거나 위에서 교수형 밧줄을 던져 목을 매달아 죽이거나, 천장에서 거꾸로 튀어나와 총을 쏴 죽이는 킬러 특유의 프로페셔널한 살인 방식을 보여준다.


특히 레옹이 완전히 등장하는 나이프 장면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보는 동안 덜덜 떨었을 정도였다. 등 뒤의 어둠 사이로 번쩍이는 나이프와 함께 하얀 손이 스윽하고 튀어나와 목을 감싸는데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냉혹한 킬러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으로, 레옹이라는 한 인간의 삶은 너무나도 고독하고 단조롭다. 잔혹하고 단호한 살인 방식과는 달리 그는 미성숙하고 어리숙한 내면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남자다. 겨우 열두 살밖에 되지 않은 마틸다에게 번번이 휘둘리고, 그러다 결국 그녀의 끈질긴 말대로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버리는. 오랜 상처를 마침내 덮고, 마틸다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며, 이 영화는 마틸다를 내세운 레옹의 성장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지워지지 않는 날카로운 상처를 가슴에 품고 서로 함께 하게 되는 마틸다와 레옹은, 몸에 돋은 가시로 서로를 찌르고 있는 장미 두 송이와 같다. 어느날 그의 삶으로 뛰어든 고아 소녀 마틸다는 자꾸만 고독에 익숙해졌던 레옹의 약한 내면을 끄집어 내고, 거침없이 사랑을 고백하는 소녀를 보며 레옹은 오래전 그가 사랑했던 한 여자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그의 복수를 떠올린다.

 

옛 연인의 죽음과 그에 대한 복수는 레옹의 삶에 있어 지워지지 않는 낙인과도 같은 상처다. 그 복수로 어리숙하고 천진했던 소년 레옹은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킬러가 되었고, 그 누구도 곁에 둘 수 없는 겁쟁이가 되고 말았다. 사람이 뿌리내릴 수 없는 그의 얼어붙은 땅 위에서 외로운 그의 곁을 지키는 건 아무런 불평도 할 수 없는 작은 화분 하나 뿐이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않는 화분은 레옹의 쓸쓸하고 정처없는 삶을 대변하는 소품이다.


직업과는 달리 레옹은 살인을 즐기지 않는다. 샤워를 하며 고해성사를 하듯 욕실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녹초가 된 몸을 맡기는 남자의 표정은 고통스러워 보인다. 고요한 집 안 우유 두 잔을 마시고, 스위치를 내려 어둠이 드리워진 거실 속 소파에 고요히 몸을 기대는 남자의 모습은 단조롭고 고독한 그의 삶의 모습 그대로이다.

 

지루한 흑백 영화를 입을 벌리고 바라보는 어리숙한 남자가 그토록 무감정하게 살인을 직업으로 삼기까지, 얼마나 많은 회한과 고통이 그의 동토 위로 불어닥쳤을까.

 

남자의 깊은 상처 위로 쌓이고 쌓인 외로움은 너무나도 두터워서,겁쟁이인 남자가 뿌리를 내릴 틈이 없었다.

 

보는 내내 나마저 남자의 고요하고, 고독한 삶에 침잠해가는 기분이었다.

 

그랬던 남자가 당돌한 소녀 마틸다를 만나 변해가고, 혼란스러워 하고, 화를 냈다가도 소녀의 무사함에 안도하며, bitter sweet한 삶의 여러 면을 맛보기 시작한다.

 

 

 

 


 

 

소녀를 밀어내던 내면의 저항이 사그러지고 그의 가장 아픈 상처를 내보였을 때, 레옹은 소녀에게 위로받는다. 죄책감과 회한, 두려움으로 편히 잠들지 못했던 레옹은 소녀가 눕히는 손길에 저항하지 못하고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늘 한 쪽 눈을 뜨고 잠들'기에 선잠을 자던 레옹은 난생처음 어린 아기처럼 코를 골며 잤다. 마틸다보다 늘 먼저 일어나 주위를 경계하고, 화분을 내다놓고, 운동을 하던 레옹은 심지어 마틸다보다 늦게 일어나기까지 한다. 레옹의 내면에 단단히 쌓여있던 고통과 두려움 등의 감정이 녹아내리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화에서 마틸다는 최악의 비극을 우유를 사러 나감으로써 회피하게 되는데, 그의 가족이 스탠스필드에게 참살당할 때 그랬고 레옹을 습격하려는 SWAT에게 붙잡힐 때도 그러하다. 마틸다가 그들에게 붙잡히지 않았더라면, 암호를 바꿔 가르쳐주지 않았더라면 레옹은 급작스러운 습격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허무하게 당했을지도 모른다.

 

비록 스탠스필드의 보복이 마틸다의 초조한 마음과 섵부른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을지라도, 레옹이 마틸다를 구하러 감으로써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마음을 열게 된다.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희망과 위기의 굴레다.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 통상적인 남녀의 사랑이라고 일컫기엔 다소 복잡할지도 모른다. 마틸다는 조숙하지만 한편으로는 여리고 위태로운 소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침대에 누워 레옹을 사랑한다고 느끼는 이유를 'knot in the stomach 배의 매듭'을 통해 고백할 때가 그렇다. 그것은 마틸다의 적극적이고 거침없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소녀로서의 순수한 일면을 나타내는 대사다.

레옹은 한 번 사랑을 했지만, 그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살인자가 되어 킬러의 길을 걸었다. 레옹에게 사랑이란 상처와 아픔, 회한을 주는 것이다. 연인 사이의 사랑 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지지 못할 정도로, 레옹의 상처는 깊다. 때문에 레옹은 거침없이 다가와 그에게 제 감정을 토로하는 마틸다를 밀어내고, 회피하고, 도망치려 했을지도 모른다.






마틸다는 초커를 목에 매고 있는데, 마치 롤리타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희고 가느다란 목선을 강조시켜 도착적인 여자로서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면서, 소녀와 여자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표현한다.





레옹에게 계약을 제안할 때나 그를 이용해 복수를 이루려고 할 때는 이렇듯 차가운 어른의 눈빛을 보이다가도,






최후의 순간에 레옹을 두고 떠날 수 없다고 흐느낄 때에는 어린 아이 같은 얼굴을 내보인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를 오가며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표현한 나탈리 포트만에게 새삼 경의를.

 

 

 


마지막 장면에서 마틸다가 화분을 땅에 심으며, you라는 표현 대신 we 라는 단어를 쓴다. ("I think we will be okay here.") 사랑한다면 공원에 심어 뿌리를 내리게 해야 한다는 본인의 말을 지킨 것인데, 화분과 레옹을 동일시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비록 레옹은 세상에 없지만, 소녀와 함께 뿌리내려 살아가게 될 것임을 상징한다.

 

무릎을 꿇고 화분의 식물을 땅에 심은 마틸다의 모습을 공중에서 비추던 화면은, 공원 건너편 도심의 스카이라인을 비추며 막이 내린다. 레옹이 갇혀 있었던, 죽어서야 나오게 되었던 차가운 도시를.

 

 

 

 

 


큰 키에 어리숙하고 순수했던 고독한 킬러와, 숙녀 같았던 소녀 마틸다는 내 마음 속에 뿌리내려 살아갈 것이다.


안녕, 레옹. 안녕, 마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