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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변하는 관계에 대한 소고

2015. 4. 6. 23:22 | Posted by 도유정




'너 변했어. 예전엔 안 그랬는데.'


통속 연애 소설에 나올법한 흔해빠진 말이다. 항상 자신을 배려해주고 1순위로 생각해주던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소홀해지기 시작했을 때든, 혹은 끓었던 물이 서서히 식어가듯, 관계의 온도가 미지근하게 변했을 때든.


이 말은 비단 사랑하는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친구 관계, 가족, 지인 관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어, '변하지 않는'이라는 말은 얼마나 오만하고 어리석은가.


사람은 끊임없이 변한다.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에도 산뜻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우울해지고, 그럼에도 누군가가 건네는 상냥한 한 마디에 다시 위안을 얻는 존재가 바로 사람인데, 사람이 어떻게 늘 한결같을 수 있을까?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관계는 둘 이상의 사람이 서로 교류하며 맺어가는 어떤 무형의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관계의 주체는 사람, 사소하게는 그 날의 기분부터 크게는 어떤 역경이나 경험으로부터의 교훈에서 관계는 끊임없이 요동치고, 변할 수밖에 없다.


그 사람과 나의 하루는 각기 다르다. 자고 일어나는 자리부터 걷는 거리, 먹는 음식, 만나는 사람이 모두 다르므로. 


서로 다른 이 모든 경험은, 관계에 반영된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던 사람이었는데, 말씨부터 행동까지 모두 변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오랫만에 만난 사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 머릿속의 멈춰진 기억 속에 박제된 그 사람과, 지금 내 앞에서 살아 숨쉬며 말하고 있는 사람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 그 낯선 느낌이 관계에 긍정적인 활기를 불어넣을지,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부정적인 느낌을 줄 지는 상황, 내 처지에 따라 다르다.


나는 최근 관계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사실 이런 변화를 느낀 지는 꽤 되었다. 제일 먼저 느꼈던 변화는 대학 진학 후부터. 비슷한 환경, 비슷한 교육을 받았던 중 고등학교 친구들이 외모부터 말씨, 성격까지 변해서 나타난다. 여기에서 기존의 관계가 정리되기도, 더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관계는 크게 요동치지 않는다. 아무리 서로 대학이 다르고 전공이 달라도 20대 대학생으로서 공유하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낯설은 느낌을 받았던 것은 주변 사람들의 취직 이후였다. 학교와 사회는 너무나도 다른 곳이었던 것 같다. 내 주변사람들은 어딘가 모질게 단단해지고, 각자의 삶에 몰두한 채 내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사회의 무서움을 성토하며 나에게 공감을 요구했지만, 아직 어떤 시험을 준비하던 학생인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얼마간 서로의 공감대를 찾으며 관계의 과도기를 거쳤던 것 같다. 나는 그 지인의 날선 단단함이 낯설었고, 전에 볼 수 없었던 단호한 태도에 나도 모르게 상처를 받았었다. 그것이 의도적으로 나를 향한 것임이 아님을 알고 있었음에도.


항상 좋은 인연을 간직할 거라고 믿었던 어떤 사람과는 정말 예상치도 못한 오해로 아프게 관계를 정리했고, 또 대화하고 만날 때마다 유쾌했던 사람에게는 나날이 섭섭함을 느끼게 된다. 취직 후, 혹은 취직 준비의 바쁜 자신의 삶에 몰두해서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것은 안다. 하지만 늘 먼저 문자하고, 하루나 이틀 후에나 오는 답장을 기다리다 그 간결하고 성의없는 답장에 실망하는 내 심정은? 늘 내가 먼저 질문하지만 정작 그 사람은 내 근황에 대해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데. 너는 나에게 어떻게 지내냐는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아예 연락이 끊긴지 몇 달 째, 하다못해 그 전에 미리 언질이라도 줬더라면 이해라도 해줬을 텐데. 그 사람의 각오나 결심이 어떻든 어느 순간 카톡창에 지워지지 않는 1 을 보는 내 심정은 생각 안 해봤을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은 틀린 것이 없다. 비록 정말 마음이 통하는 사이는 1년 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반갑고 할 말도 많다지만, 어디 사람의 관계가 늘 그럴 수 있는가.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오히려 자주 만나며 서로의 근황을 따라잡아야 대화할 거리도 많은 법이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 데면데면한 탐색전을 벌이며 나의 어느 부분까지 보여줘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지겹고, 그 사람의 금을 긋는 듯한 방어적인 태도에 섭섭해지는 것도 정말 싫다. 만나서 반갑고 더 자주 보고 싶은 것은 나 뿐이었구나, 하고 느낄 때 저절로 내 마음 속에 깃드는 배신감과 섭섭함, 외로움의 감정이 자꾸 내 안에 죽은 퇴비처럼 쌓여간다, 켜켜이.


먼저 손을 내밀었지만 그 손이 거절당할 때마다 느꼈던 감정의 퇴색된 앙금들이 자꾸만 나를 겁쟁이로 만든다. 연락을 하려다가도 그 사람이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면 어쩌지? 만나자고 했는데 바쁘다고 거절하거나, 당일 직전에 거절하면서 다음 약속을 잡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소심하고도 내게는 뼈아픈 걱정들이, 문자를 보내려는 내 손가락을 멈추고 전화를 걸려는 내 마음을 잡아 끊는다.


거절당하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내 안에 깃들어있던 좋은 추억마저 퇴색되어 버리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람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마움과 좋은 감정이 현재의 섭섭함 때문에 씁쓸한 뒷맛만을 남기는 잊고 싶은 기억이 되는 것을, 나는 정말 견디기가 너무 힘들다. 내 기억에 뿌리를 박은 오래된 추억의 나무가, 그 위에 뿌려지는 지금의 독 때문에 부식되어버리는 그런 느낌이다.


아직 내 주변에는 결혼한 사람이 없지만, 이런 관계의 변화는 결혼과 출산 후에 극명해진다고 하는데. 나는 벌써부터 두렵다. 취직 후의 변화도 받아들이기가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웠는데, 각자의 가정이 생기고 나면 나조차 더이상 어쩌할 수 없는 변화의 급류 속에 떠밀려갈까봐.


나는 우울한 밤에 가끔 상상해보곤 한다. 결혼과 출산 후 각자의 삶에 더욱 매몰될 주변의 관계를. 과연 그 때가 되면 내 옆에 몇 명이나 남아있을까?


삶의 변화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사람은 늘 변하는 존재라고 앞에서 말했지만 사실 나는 변화가 두렵다. 나는 변하고 싶지 않은데 이미 내 주변은 변했거나, 변하고 있다. 우리의 관계는 이대로일 수 없다는 게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나는 그저 내게 너가 소중한 것만큼 너에게도 내가 소중한 존재이기를 바랐는데. 사회가, 삶이 뭐라고 다정한 너를 내게서 빼앗아가버렸을까.


관계에 의존하지 않으려하지만 늘 관계에 흔들려버리는 내가 싫다. 다른 사람 때문에 우울한 것도 싫고, 쿨하지 못한 내 질척한 모습도......


외로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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